회덮밥 3.99달러, 순두부 4.99달러, 냉면 2그릇 8.99달러, 콩나물국밥 99센트, 무제한 고기 1인당 9.99달러! 요즘 한인타운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가격이다. 지속적인 불경기로 외식인구가 줄어들면서 일부 타운 요식업소들의 가격표이다.
2년 전이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격이다. 지난여름 타운의 한 일식집의 2.99달러 회덮밥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회덮밥 한 그릇에 10달러를 받아도 경영이 힘들 텐데 한시적이라도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었었다. 그렇게 시작된 타운 요식업계의 가격경쟁은 이제는 한 집 건너 하나씩 4.99~5.99달러 런치스페셜이 당연시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른바 요식업계의 ‘쩐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식당에서 음식가격을 1달러를 받든 10달러를 받든 그것은 업주의 재량이다. 그러나 비즈니스가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에는 이익이 남아야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상식이다.
한인요식업계에 따르면 보통 탕 종류의 한식은 최소한 10달러 정도는 받아야 종업원들 임금 주고 렌트 내고 재료비와 반찬 준비 등 업소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상당수의 업소들이 그 절반에 해당하는 4.99~5.99달러 정도만 받으니 자연스럽게 적자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까 업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캐시플로우만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고객들이 값싼 가격을 선호하다보니 한 업소가 가격을 내리면 이웃 업소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타운 요식업계의 현 주소이다.
결국 폐업하는 업소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남가주 한인요식협회에 따르면 현재 LA카운티에는 1,650여개의 한인요식업소가 있으며 한인타운 인근에서 모두 1,300여개의 업소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지난 연말부터 현재까지 한인타운 인근에서 최소한 60여개 이상의 업소들이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격경쟁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아무래도 일식집이다. 재료비가 비싸 자연히 음식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고 주방장, 웨이트리스 등을 포함한 인건비도 한식집에 비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당 최저임금 8달러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결국 직원을 줄이고 주인도 예전에 비해 곱절 이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타운의 고급 대형식당들도 고전하기는 매 한가지. 요즘 같은 무제한 고기 전성시대에 4명이 가도 주류까지 포함해 100달러 이하에 충분히 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고급 대형식당들의 매상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매상감소로 직원을 줄이다보니까 아무래도 고객들은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음식의 질도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다 보니 자연히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고객 입장에서는 싼 가격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서비스와 음식 질 낙후라는 희생비용을 치르게 마련이다.
한편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예전의 고객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늘어나는 업소들도 있다. 윌셔가에서 한 요식업소를 운영하는 한인은 가격을 내리면 당장 손님을 끌어 모으는 효과를 보겠지만 그것은 결국 일시적인 것이고 제 가격으로 차라리 음식의 질과 서비스에 더욱 신경 쓰면서 롱런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격경쟁에 동참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올림픽가에서 성업 중인 한정식 업소도 가격을 내리지 않고 약간 비싸게 받고 있지만 음식을 깔끔하게 하고 맛있게 하다보니까 고객들이 점심시간마다 줄을 선다.
요식업계는 전례 없는 불경기에 가격인하 경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든가 외국인 고객유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몬트레이 팍의 중국식당 가운데 절반이 최근 가격파괴에 따른 출혈 때문에 폐업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박흥률 / 부국장 겸 경제 1부장
peterpa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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