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오랫동안 실로 오랜만에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전류가 흐르면서 혼자서 은근히 점 찍어 두었다. 나는 28살 여자다. 내 나이쯤 되면 쵸이스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많이 따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따질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직업상 교회를 자주 빠지는 편이다. 그날도 야간근무로 개 고생을 하고 집으로 가서 옷을 갈이 입을 틈이 없어서 제복을 입은 그대로 허겁지겁 교회로 달려가니 이미 예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빈자리 아무데나 앉았는데 앉고 보니 바로 그 남자 곁이었다. 예배 도중에 통성기도는 대개 자기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기 마련인데 그 남자는 어찌나 큰 소리로 애절하게 기도하는지 내 한쪽 귀는 완전히 그 남자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다.
“주님 그 어린 아이 로렌을 지겨주시고 남편을 잃은 로렌 어머니를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옵소서.” 바로 어젯밤에 케빈의 총격을 받고 죽은 로렌아버지는 나의 동료가 저지른 커다란 실수였고 긴박했던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남자는 그 집과 아무 관계가 없고 단지 아침 TV 뉴스를 보고 그 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착하기도 하지. 그 뒤로 남자는 이상하게 내 눈만 마주치면 흠짓 놀라는 기색으로 자꾸 피하는 눈치였다. 왜 저럴까? 내가 좋아하는데.
결혼한 여자들은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일본남자 사이에 아이 하나를 두고 있는 나보다 한 살 적은 제니가 “언니 요즈음 누구 사랑하는 거지?” 하고 물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 “눈이 반짝반짝하고 무언가 애교스러운 몸짓도 하니까.” 어마 내가?! 내가 그 남자를 확실히 좋아하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여태껏 그런 감정이 한번도 없었는데 내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나는 인권문제에 깊숙히 관여 하시다가 이민 오신 아버지 때문인지 상대가 어느나라 사람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렇지만 이 다음 그런 기회가 되면 나는 제니한테 “얘, 너 남편이 뭐가 좋아서 결혼했니?”하고 정말 꼭 한번 묻고 싶다. 국제 결혼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제니 말고도 두쌍이 더 있는데 대개 남자나 여자나 한국 사람이 다 잘생기고 상대방은 이상하게 얼굴부터 많이 딸린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제니도 주주 장처럼 생겨 웃는것도 말하는 것도 매력적인 애가 글쎄 남자는 꼭 사무라이 영화에 나오는 쫄개 같은 인상이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 남자는 나보다 훨씬 잘 생기고 기품있는 한국 남자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지만 나는 얼굴이 넙적한 남자를 좋아한다. 허리도 굵어야 한다. 그렇다고 뚱뚱한 체격이 아니라 배가 나오지 않으면서 허리가 굵고 넙적한 얼굴. 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는 손등의 피부도 적당히 까칠하고 좋아 보였다. 상대방이 나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나하고 아무 관계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먼저 좋아야지.
나는 아직 내 쪽에서 마음 동한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만큼 마음이 설레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남자는 멀리서 봐도 백촉짜리 강렬한 불빛을 몇 개나 받고 서있는 것처럼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금방 목욕한 사람같이 약간 검은 피부에 신선하고 언제나 청량한 느낌을 주는 남자. 내가 그렇게 무섭고 사나운 여자로 보이는지 자꾸 피하던 그 남자가 어느날 자진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계시면 얘기 좀 할게 있습니다.” 있고 말고요. 그럼 있어요. 그러나 나는 지금은 시간이 없고 오늘 저녁 우리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괜찮아요. 어른들이 아무도 없어요.” 나는 이 남자에게 숙녀방답게 아기자기하게 치장한 예쁜 내방이며 이것저것 자랑하며 보여주고 싶은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오세요. 괜찮아요.” “예.” 그래서 나는 우리집 약도를 세밀하게 그려주었다.
정확하게 약속된 시간에 집에 온 그 남자는 무척 긴장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경찰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영주권을 내어 줍니까?” 나는 직감적으로 금방 알아차렸다. “군대는 그런 제도가 있지만 경찰에는 아직 없어요.” 그러자 남자는 실망한듯이 나를 한참 바라 보았다. 그가 나를 피한 것은 단지 내가 경찰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자꾸 무서웠단다.
아, 나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남자한테는 너무도 심각한 문제였다. “군대에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의무적으로 그냥 갔지만 아무리 미국 군대라고 해도 역시 군대는 명령 하나로 통제하는 삭막한 곳 아닙니까.” “시민권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케이스도 있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28년 동안 당당하게 지켜왔던 나의 자존심도 상관없이 마음속으로 기도하듯이 간절하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에 이미 결혼한 아내가 있는 몸입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방안에 냄새 제거하는 스프레이도 뿌리고 창문 커튼도 빨간 리본으로 하트형처럼 묶고 음료수도 여러가지 준비했던 일을 생각하며 목구멍으로 자꾸 침이 넘어갔다. 그 침과 함께 도랑의 더러운 물처럼 뜨거운 나의 눈물도 목구멍으로 자꾸 넘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가장 슬픈 노래고 아름다운 것은 슬프고 슬픈 것은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몇 달 후에 그 남자한테 지금 열심히 훈련받고 있다는 슬픈 편지가 왔다. 무지하게 힘들겠지. 안다. 군대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던 사람이 내가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기 가족을 위해 그처럼 어려운 결단을 했다는 사실이 정말 가슴 터지도록 벅찬 감동과 함께 나는 끝내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 사람은 내가 미쳐몰랐던 아름다운 이별을 주고 갔다. 비록 내가 자기를 그렇게도 원했다는 것도 모르고 떠나갔지만 세월을 지나면서 나는 새삼스레 세상에 있는 모든 음악도 자유도 살아가는 것도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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