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을 둘러싼 총기논쟁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여론을 극단적으로 분열시켜온 가장 뜨거운 사회이슈 중 하나가 총기논쟁이다. 보수진영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총기 소유권을 지지하고 진보진영은 시민의 안전을 강조하며 총기규제를 지지한다. 양측 주장 모두 대의명분도 충분하고 또 감정적 대립이 비등점까지 치솟아 있어 여론에 민감한 정치가들은 가능하면 못 본척 외면하려는 이슈다.
2일 대법원에선 시카고시 권총소지 금지법에 대한 위헌소송 첫 심리가 열렸다. 제1라운드가 보수의 승리로 끝난 지 약 2년만이다. 2008년 6월 대법원은 워싱턴DC의 권총소지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수십년 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수정헌법 제2조의 해석에 대해 ‘개인의 총기소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제2라운드 역시 보수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결과만 예상한다면 미전국의 설전이 시끌시끌했던 1라운드보다 훨씬 싱겁게 끝날 것이다. 시카고의 금지법 내용이 위헌판결 받은 DC의 것과 유사한데다 보수 5명, 진보 4명이라는 대법관들의 이념지형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번의 쟁점은 좀 다르다. 적어도 두 가지 사안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
첫째, 시카고 권총금지법은 개인의 총기 소지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되는가? 대법원의 답은 당연히 “그렇다”로 나올 것이다.
둘째, 수정헌법 제2조의 총기소지 권리는 연방만이 아니라 주와 각 지역정부, 미 전국에 확대 적용될 수 있는가? 워싱턴DC는 연방관할이고 2008년의 판결은 당시 결정사항이 주 및 시정부 관할 지역에도 적용되는지의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이 요구하는 것은 쉽게 말해 “시카고 주민에게도 DC 주민과 똑같은 총기 소지권을 달라”는 것이다. 어, 당연한 것 아닌가…이것이 보통사람의 반응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기서 미 헌법에 대한 공부를 잠깐 하고 가기로 하자. 1787년 7개 조항으로 제정된 미 헌법은 이후 200여년 동안 27개의 수정조항이 추가되며 보완되어 왔다. 수정헌법 첫 10개 조항이 권리장전(Bill of Rights)으로 불리는 개인의 기본권 선언이다. 그런데 이 권리장전 모두가 주정부를 직접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이나 종교, 집회의 자유 등도 헌법에 대한 최고 해석자인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차례차례 주와 지역정부 등에 확대 적용되어 왔다. 제2조를 비롯해 권리장전의 절반가량은 아직도 법적으로는 연방관할에만 적용된다.
대법원은 확대적용 판결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남북전쟁 후 해방노예들의 민권을 위해 채택된 수정헌법 제14조를 근거로 삼을 것이다 : “어떤 주도 미국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을 제정할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떤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사람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관할 하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법의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번 케이스의 결과는 총기규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기본권에 대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수정헌법 제2조에 명시된 개인의 권총소지 권리는 미 전국 어느 곳에서나 국민 누구나가 똑같이 누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총기규제 보다는 민권이 먼저임을 인정하면서도 총기소유권 승소 판결이 가져올 전국적 파장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DC 판결이후 제기된 총기규제 위헌소송이 200건에 가깝다. 시카고 판결이후엔 전국 각 지역정부의 거의 모든 관련법이 위헌대상이 될수도 있다.
‘맥도날드 대 시카고 시’로 명명된 이번 소송의 대표 원고는 76세의 흑인노인 오티스 맥도날드다. 우범지대 주민인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은 집에 총을 두는 겁니다. 총이 있다는 걸 알면 갱들이 덜 넘볼 테니까요”라고 호소한다. 시카고와 함께 소송당한 인근 오크팍의 권총금지법은 성난 소송당사자가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를 권총으로 쏘아 죽인 후 제정되었다.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시장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 것은 연방이 아닌 시 정부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판결은 대법원의 금년회기가 끝나는 6월말에야 나오겠지만 사실상의 결과는 이미 나온 셈이다. 위헌 판결이 불가피하다면, 기대할 것은 총기 소지권리에 대한 제한이다. 맥도날드가 원하는 자기방어 권리와 시민을 보호하려는 시정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각 지역정부가 ‘합리적’ 규제를 할 수 있도록 연방대법원의 지침이 필요하다.
거듭된 승소에 의기양양해진 총기옹호론자들이 교회와 캠퍼스, 공항과 정부청사에까지 무제한 총기 소지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오늘도 미국 어디에선가 80여명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숨질 것이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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