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배 노인은 전화를 받고 급히 밖을 나갔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원이 그래도 같은 한국사람이라고 자기 근무시간에 어머니가 조금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고맙게도 곧장 알려준다.
김노인이 용하게 자기가 나가는 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막 올라타는데 뒤에서 누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황 노인 이었다. 아침마다 7, 8명이 맥도날드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데 한사람 이라도 빠지면 모두 걱정한다. 그래서 김노인은 이미 발판위에 올라갔기 때문에 차속에서 한국말로 큰소리칠 수 없어 병원쪽을 가리키며 지금 문병간다고 알려주었다. 맥도날드에 모이는 사람은 모두 다 노인회 회원들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에 노인회에 가서 밥먹는 것 말고 별도로 아침마다 매일 만나고 있다. 대장이 따로 없다. 그저 아침에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미국 사정 돌아가는 얘기며 평소 밉상구는 꼴통놈 한두번 씹고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돌아간다.
김노인이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원 말이 어머니가 밥을 전연 먹지 않겠다고 버틴다는 것이다. 이제 정신이 조금 드시나 보다. 어머니는 정신이 들면 밥을 아예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온전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만을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 노인은 시계를 세월이라면서 눈에 보이는 시계는 손목시계며 벽시계 할 것 없이 모조리 때려 부시는 어머니를 이제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래전 아들을 못낳는 어느집 후처로 들어간 어머니는 연달아 세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김 노인의 두 동생은 장성한 후에 차례로 자살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둘째도 잃고 막내 동생을 잃었을 때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한참 내려다 보시다가 괘씸한 놈! 하고 죽은 동생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어머니는 그때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김 노인을 따라 20년전에 미국에 온 어머니는 얼마나 알뜰하게 생활하시는지 노인 아파트에서 공짜 물이라도 함부로 쓰지 않고 돈내지 않는다고 병원에 함부로 가지 않았다. 이렇게 편안하게 미국사는 것도 고마운데 날짜 한번 어기지 않고 나라에서 돈을 주니 이런 효자가 어디있어? 그렇게 말할때는 어머니가 온전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엿장수가 와서 돈되는 쓰레기 다 가져가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고 웃으시던 어머니는 그 후 김노인의 마누라가 몇 년전에 죽고부터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음정도 틀리지만 어머니가 가끔 혼자서 읍조리는 그 노래처럼 요즈음은 김노인의 마음도 그 노래와 똑같았다. 그렇지만 하나 있는 딸년은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면서 갓난아기 입에 똥을 밥이라고 먹여 죽게한뒤 같이 못살겠다고 뉴욕으로 직장을 옮겼고 별다른 기반도 없이 돌아가고 싶어도 자기는 한국에 갈 수 없었다. 귀에 들리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이 그립고 길가다가 아무데나 사먹을 수 있는 한잔 소주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비좁은 버스속에서 어깨만 살짝 부딪혀도 실례가 되는 미국에서 김 노인은 살면 살수록 자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맥도날드에 모이는 노인들도 한 두명이 자꾸 줄어 든다. 며칠 나오질 않아 알아보면 어김없이 병원에 입원했다. 요즈음은 꿈에 죽은 동생놈과 마누라 얼굴이 자주 나타난다. 사람이 늙으면서 죽은 형제나 죽은 사람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들과 가까워지려는 징조기 때문에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김 노인은 다음에 두 동생을 만나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드냐고 꼭 한번 묻고 싶다. 어머니보다 먼저 목숨을 끊은 두 동생이야 말로 정말 괘씸한 놈이다. 김 노인은 어머니를 다독거려 주고 두 시간쯤 있다가 나왔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그러나 노래처럼 정처없다기 보다 힘없는 발길이다. 잠시 여행도 아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아봤자 옛날에 알던 친구들은 다 자기살기 바쁘고 세월 좋을 때 빠져나갔다가 별볼일 없이 돌아온 놈을 예전처럼 반기지도 않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김 노인은 모이는 사람들이 다 갔겠지 그러나 혹시나, 하고 눈앞에 보이는 맥도날드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선배. 잘왔네.” 아직 가지 않고 남아있던 서너명의 멤버들이 반갑게 소리쳤다. 아, 하루도 안보면 궁금하고 그리운 저 얼굴들. 김 노인은 옛날부터 자기 이름 때문에 수모를 많이 겪었다. 형들이 선배! 하고 불러놓고 어린놈 보고 선배라고 부르니까 멋적은지 뒤에 꼭 욕을 갖다 부치며 엉덩이를 걷어 채였지만 미국에 살다보니 누구든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선배, 아직 안죽었네? 오늘은 자네가 없으니까 얼마나 심심했는 줄 알어? 커피 시켜줄께 두잔 마셔.”
그래, 고향이 별거드냐. 어딜가면 이만한 데가 있으랴. 사는곳에 사람 냄새나고 친구가 있고 정들면 고향이다. 그래서 소똥같이 굴러도 이생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가족 걱정에 사는 걱정없으면 죽은 다음에 망자들이 갖는 재미없는 세상이다. 김 노인은 조금 전까지 한국가고 싶은 정처없던 생각이 언제 그랬드냐는 듯이 말끔히 사라지고 나라에서 꼬박꼬박 돈 받으며 한가롭게 사는 이곳이 새삼스레 좋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이 자꾸 나왔다. 그래, 역시 늙으면 미국만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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