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캣 갤러리 14일부터 박찬경·스나이더 ‘브링크맨십’전
▶ 냉전과 분단의 상처, 역사 속 억압된 주제 끄집어내
월트 디즈니 홀의 2가쪽 코너에 있는 ‘레드캣 갤러리’(Gallery at REDCAT)는 새롭고 혁신적이며 특별한 시각예술을 소개하는 현대미술의 최전방이다. 일반 갤러리나 뮤지엄이 소화하기 힘든 실험 아트의 산실이기도 한데, 이곳의 관장 겸 큐레이터가 한인 클라라 김씨라는 사실이 무척 놀랍고 자랑스럽다. 이곳은 일년에 5회의 기획전을 열고 있으며 한국인으로 김홍석, 김소라, 최정화, 양혜규, 임민욱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6년 동안 기획된 전시회가 총 30회였음을 감안하면 현대미술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작가들의 약진이 엿보이는 전시장이기도 하다. 이 레드캣 갤러리의 2010년 첫 기획전 ‘브링크맨십’(Brinkmanship: Park Chan-Kyong and Sean Synder)에서 우리는 또 한명의 한국인 작가 박찬경을 만나게 된다.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은 2월14일부터 4월18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서 독일계 미국작가 션 스나이더와 함께 분단과 냉전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작업한 작품들로 우리 세계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고발하고 도전한다.
‘브링크맨십’은 ‘벼랑끝 전술’이란 뜻이다. 냉전시기에 사용되던 용어로서 미소 간 극단적인 효과를 노리던 외교전술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핵을 이용한 북한의 정치행태를 말한다고 작가 박찬경은 설명한다. 그와 스나이더는 2002년에 독일에서 처음 만났으며, 북한 문제와 냉전에 대해 같은 시각을 공유함을 깨닫고 함께 작업하기를 고대해왔다고 한다.
두사람은 이 전시회에서 사진, 비디오, TV, 다큐멘터리, 설치 등을 사용한 각자 4개의 비주얼 작업을 보여준다. 지나간 시대 우리를 위협했던 정치전술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상처,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민중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의 염원과 이데올로기 등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고… 사실은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걸 싫어하죠. 그저 즐기자고만 하는데 그건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악몽 같은 기억도 끄집어내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합니다. 세상은 너무 쉽고, 또 쉬운 게 많으니까 다들 생각 안하려 하고 귀찮아하지만 예술까지 그러면 안 되죠. 앞서 비평하고 대중을 이끌어가는 예술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박찬경의 작품들은 ‘신도안’(Sindoan 2008), ‘파워 통로’(Power Passage 2004), ‘비행’(Flying 2005), ‘3개의 묘지’(Three Cemeteries, 2009-10) 등이다.
신도안은 계룡산 아래 지역으로 원래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910~20년대 신종교와 전통종교의 집산지였는데 현재는 3군 통합사령부가 들어서 있는 조금 특이한 지역이다. ‘신도안’은 이 지역 무속인과 전설 등의 자료를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4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불교를 포함한 한국 전통의 신앙과 민간종교에 관한 작업이다.
“기독교가 들어온 후 미신취급을 받고 있는 우리의 토속종교와 민간신앙을 재조명하는 작업입니다. 무조건 미신취급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왜곡된 것이라는 점, 오히려 여기에서 민중의 유토피아에 대한 깊은 염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새마을 운동 이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는 그는 한국을 오래전에 떠난 미주한인들, 특히 대전과 공주 쪽을 아는 사람들은 향수를 느낄 수도 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작인 ‘3개의 묘지’는 파주에 있는 실향민 묘지와 적군묘, 그리고 동두천의 상패동 묘지를 기록한 작품이다. 실향민 묘지는 그나마 조성이 잘 돼있는데, 북한땅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조성된 적군묘는 훨씬 삭막하다. 이곳엔 한국전에서 죽은 무명의 군인들, 북한군, 중국 군인, 그리고 남파간첩이지만 북한이 인정 안하기 때문에 북송시킬 수도 없는 무장공비들이 묻혀 있다. 이 적군묘보다 더 황폐한 곳은 상패동 묘지로, 미군부대 클럽에서 일하던 윤락녀들과 연고자 없이 묻힌 사람들의 묘가 공식적으론 1,200기, 실제로는 5,000기나 있다는 곳이다. 반이 윤락여성의 묘, 반은 무연고자들을 암매장한 자리로, 참으로 을씨년스러워서 제정신으론 가기 힘들고 소주 한 잔 걸쳐야 찾게되는 곳이라 하였다.
이 ‘3개의 묘지’ 작업에는 주변에서 나는 소리를 일부러 집어넣었다. 근처 사격장에서 들리는 총소리, 멀리 골프장에서 공 날리는 소리, 무심하게 날아다니는 새소리 등이 분단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증언하고 있다.
‘비행’은 김대중과 김정일의 2000년 정상회담을 조명한 13분짜리 비디오 작업이다. 당시 남한 대표단을 태우고 평양까지 직항로로 날아간 비행기에서 항공촬영한 TV자료를 얻어다 재편집한 작품으로, 배경음악으로 고 윤이상 선생이 견우직녀 이야기를 소재로 작곡한 ‘더블 콘체르토’(1977)를 사용함으로써 윤이상에 대한 헌사를 겸해 냉전과 분단, 전쟁과 평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파워 통로’는 인터넷에서 찾은 냉전 관련 이미지와 나사(NASA)에서 다운로드 받은 이미지를 몽타주한, 같은 냉전 상황의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병치시킨 작업이다. 1975년 한국에서는 땅굴 발견으로 반공의식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 우주 랑데부에 성공한 미국과 소련은 데탕트를 통해 미소관계가 회복된 시기의 모습들을 함께 보여주며 정치와 파워 게임의 벼랑끝 전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이기도 한 박찬경은 미술과 영화가 혼합된 작품들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억압된 주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주목받아왔다. 다들 말 안하고 숨기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그는 이런 문제를 음지에 숨겨두지 말고 양지로 가져와서 들여다보고 이야기하자고, 그래야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했으나 거기선 배운게 별로 없었다고 툴툴 대는 그는 93년부너 96년까지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이번 전시 준비차 LA에 와있는 동안 그는 모교인 칼아츠에서 초청강의를 하기도 했다. 2004년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저서로 ‘독일로 간 사람들’(파독 광부와 간호사에 관한 기록)을 내기도 했다.
한편 그와 함께 전시하는 션 스나이더는 북한 TV방송에 관한 작업(Smoke in Mirrors 2009-10)과 1963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마케도니아 스코페의 재건과정에 관한 설치(A Revisionist Model of Solidarity 2004-05),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관한 포토저널리즘의 윤리를 고발한 비디오 에세이(Casio, Seiko, Sheraton, Toyota, Mars 2004-05) 등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 전시회는 레드캣의 클라라 김 큐레이터와 정도련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가 공동기획했으며, 2월13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오프닝 리셉션에서 정도련 큐레이터가 아티스트들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입장료 무료. 월요일과 공휴일 휴관.
레드캣 갤러리 주소 631 West 2nd St., LA, CA 90012
문의 (213)237-2800 www.redcat.org
<정숙희 기자>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
‘3개의 묘지’에서 파주 실향민 묘지.
다큐멘터리 ‘신도안’의 한 장면.
‘비행’에서 꽃을 들고 환영하는 북한 시민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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