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월 초이틀 새벽 안개 속에 배달 된 신문에 실린 어느 외로운 할머니의 사연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치고 간 지, 한 달이 지났건만 그의 아픈 사연이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장바구니인 듯한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뒷모습 사진이 크게 겨뜨려져 실린 기사 내용의 주인공인 그 할머니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에서 보는 본국의 어느 달동네의 독거노인(獨居老人)이 아닌, L.A 지역의 가난한 히스패닉크계 민족들이 모여 살고있는 빈민촌의 전세 백 달러의 쪽방에 혼자 사는 한국인 할머니이기에 더욱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연유(緣由)인 것이다.
75살의 정순임 할머니 !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2년전, 자식들이 이민와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 온 할머니, 처음에는 딸이 살고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지만, 어쩐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딸 곁에서 살지 못하고, 연줄이 끊힌 연 모양으로 아들이 살고 있는 L,A로 5개월 전에 날리어 가고만 할머니,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아들마져 할머니가 기댈수 있는 언덕이 되지 못해, 하는 수없이 원치 않는 독거의 나날을 보내는 정 할머니!
일부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이민의 길을 택하듯이, 아들 딸들을 이민 보내고 80이 가까운 정 할머니 부부가 한국에 처져 살았다면, 할머니는 그가 지금 밟고 오르 내리고 있는 이국(異國) 땅의 가파른 계단과 같은 계단을 지난날의 그의 삶의 굽이굽이에서 수 없이 오르 내렸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낸 나날의 생활에서는 이웃과 그리고 영감과의 언어의 소통이 가능했지만, 지금의 그의 생활은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어도 들어 줄 상대방이 없고, 걸을 수 있어도 갈 곳이 없어, 우두커니 하루 하루를 보내는 소위 소통의 틈새가 사방으로 벽이 되어 꽉 막혀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로운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의 외로움의 애절한 표현은 그가 일주일 동안 몸져 혼자 누워 있었을 때, 그 누구가 와서 그의 방문을 두들겨 주는 소리라도 내어 주었으면 하고 말한 할머니의 실토가 바로 그것이인 것이다.
방문을 두들겨 주는 그 소리 ! 이는 바로 그의 외로움을 날려 보내는 소리가
아닐까 ? 한 달에 단돈 2백 달라로 연명(延命)하고 있다지만, 배 고픈 것은 참아도 외로운 것은 견디기 힘들 다는 옛 속담이 바로 할머니의 지금의 심정을 빗댄 속담이 아닐까?
한편 인생 연극에는 연습이 없다 ! 라고 말했듯이, 할머니의 삶의 연극에서 보다 잘 살기 위한 연습이 없었다면, 할머니가 그의 인생무대에서 읊는 대사는 다름아닌 ‘외롭다!’ ‘살 맛을 잃었다!’ 일 것이다. 내가 만일 할머니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면, 나 역시 할머니가 읊은 그런 대사를 뇌일게 분명할 것이다.
정순임 할머니의 외로운 사연을 접한 이후, 나는 내 이민생활의 현주소를 생각해 본다. 땀땀이 닭구새끼 모양으로 티각태각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등 글거 달라고 구버정한 등이나마 나에게 내미는 할멈이 내 곁에 없었더라면, 그리고 제 밥벌이 하는 자식들이 내 집에서 3분, 5분 그리고 15분 거리에 살면서 사흘이 멀다하고 얼굴을 맞대는 그 놈들이 없었더라면, 뿐만 아니라, 47살이란 늦은 나이에 이민 와서 영어가 짧아 주류사회의 연극무대나 문학분야에 발을 드려 놓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우리말로 연극하고 80이 넘는 이 나이까지 우리 글로 내 가슴에 엉어리 진 사연을 풀 수 있는 기회와 행운이 나에게 주어 지지 않았다고 가상(假想)했을 때를 말이다. 그러나 내가 100프로의 행복지수(幸福指數)는 누리지는 못 할망정, 60, 70프로의 행복지수 쯤이라도 느끼고 산다는 자체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자위하면서, 정 할머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상대적(相對的)인 미안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민사회에서 정순임 할머니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앞으로 여생(餘生)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는 정 할머니가, 얼마 동안이 나마 외롭지 않는 삶을 살다 가게 하기 위해서는 자식들이 하루 속히 경제적인 여유를 갖는 길이라고 믿기에, 이 비교적 덜 외로운 할아버지는 내 자식 잘 되기를 빌듯이 그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빌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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