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떼고 포떼고 장기를 두라면 이 보다 답답한 일도 없을 것이다. 흥(미)도 없는 데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 지금처럼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글을 써야하는 경우처럼? 아무런 악상도 떠오르지 않는 데 작곡을 해야하는 일 등등?이런 것들은 삶에 있어서 여간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라고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산속에서 도나 닦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헤쳐나가고, 살아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러나 이처럼 답답하고 슬럼프가 느껴질 때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곤한다. 다소 기계적이고 거칠지만 쇼스타코비치만이 전하는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공산치하에서 차떼고 포떼고 음악을 만들지 않으면 안됐던 독특한 작곡가였다. 그를 사회(공산)주의의 성공한 음악가로 꼽곤하지만 그가 공산치하에서 겪었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의 드높은 예술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한 사람의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음악가로서 그처럼 어둡고 차가운 사회에서, 그처럼 위대한 예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참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응전의 정신, 강인한 생존본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간혹 궁지에 몰렸을 때 교육의 힘, 종교의 힘 따위에 의존하여 탈출을 꾀하곤 한다. 그러나 구도의 목적이 아닌, 개별적인 궁지에서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은 스스로의 힘 이외에는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인간사회도 독수리(새끼)들 처럼, 천길 낭떨어지에서 떨어져 날개를 펼 수 있는 자만이 적자생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강인한 독립심, 의지없이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간다는 것은 여간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일컨데, 힘의 논리? 위대한 창조력의 승리였다. 자유로운 생각, 자유로운 감상표현 등은 모두 반동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가지고, 또 어떤 재료로 그 삭막하게 굳어있는 공산주의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더욱이 그는 ‘레이디 멕베드’라고 하는 반 사회주의적인 오페라 작곡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음악가로서,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공산찬가를 부르면(작곡) 됐겠지만 그의 작곡가로서의 위상상 그런 유치한 수법도 통할 게재가 아니었다. 사면초가, 쇼스타코비치를 구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리의 선험적인 힘은 때로운 놀라운 마술을 발휘할 때가 있는 데 이 기적의 힘은 쇼스타코비치가 가장 어려운 위기에 빠져있을 때 다시한번 기적처럼 그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것은 쇼스타코비치의 천재, 그만이 가지고 있는 힘, 강렬한 야성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직 창조의 힘만이 구습을 타파할 수 있고, 창조의 기적만이 진정한 혁명이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쇼스타코비치는 그 척박하고도 매마른 풍토에서 교향곡 5번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었다. 무력함으로 기가 빠지고 고개가 숙여질때, 쇼스타코비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시라.
어두운 하늘 끝에서 얼마나 찬란한 햇살이? 아니 인간이란 얼마나 강렬한 영혼을 가진, 열망하는 존재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터 사회주의 정신이 굳건히 배긴 그는 1919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교향곡 1번이었다. 그 작품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브르노 발터, 토스카니니 등이 앞다투어 지휘하면서 쇼스타코비치는 일찍부터 이름을 알렸다. 교향곡 1번의 성공이후 교향곡 2, 3번과 쇼팽 국제 콩쿨(피아노 부문) 2등상 등으로 잘나가던 쇼스타코비치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1934년에 발표한 오페라 ‘레이디 멕베드’였다. 이 어딘가 혼란스러운 오페라는 쇼스타코비치를 부르조아로 낙인 찍히게 했으며 스탈린 등에게 외면 받으면서 정치적인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때 작곡한 5번 교향곡은 일명 ‘혁명 교향곡’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쇼스타코비치로서는 그만큼 절실했던 작품이었다. 느긋했던 과거의 스타일은 완전히 사라지고, 절도와 힘의 논리로서만 완성된 이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구해냈을 뿐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는데도 혁혁하게 공헌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시대적으로 낭만파도 아니었고 전격 아방가르드(현대 전위)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소 차갑고도 섬뜩한 음률 속에서 폭발하는 강렬한 희열은 영혼에 혁명처럼 밀어닥친다. 서구 사회는 구소련에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으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만큼은 열렬히 환영했다. 그의 음악이 단순한 구호에 그친 정치와는 달리 영혼에 진정한 혁명의 가치를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사회주의 정신,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 개별적인 감정이 희생하여, 그 의지가 하나로 뭉쳐 용암처럼 분출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야말로 혁명음악의 대명사, 진정한 의미의 인간승리? 감동 그 자체였다.
진리란 나무 꼭대기의 열매처럼,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픔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모험하는(단독자) 자들만이 정말로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자들은 아닐까? 우리를 절망케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두울 때면 마음을 열고 (쇼스타코비치의)교향악 소리에 한번 눈을 감아보자. 어떤 신비가? 마음 속의 혁명이 우렁차게 울려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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