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였지. 그날은 달랐을 거야. 강물은 더 힘차게 흘렀고 하늘은 더 드높게 펼쳐졌으며 산들은 조금씩 키를 높이느라 요란했을거야.
- 정용철 시인의 <아주 특별한 날> 중에서-
학교에 들어가던 첫날의 기대감, 방학이 끝나고 아직 종이냄새 폴폴 나는 교과서 받던 첫날의 떨림,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나가던 첫날의 신선함, 첫 데이트 할때의 설레이던 마음, 한국을 떠나 미국 공항에 도착하던 첫날의 느낌, 사업체를 열고 첫 손님을 맞이할때의 각오 , 이 모든것은 첫날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오늘. 오늘은 어제의 다음날이고 내일의 전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남아있는 삶의 소중한 첫날이다.
그 느낌은 새벽에 소리없이 내리고 있는 첫눈을 대할 때 처럼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 요동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희망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내게 남은 삶의 첫날인 오늘을 가능하면 기쁘고 희망적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매우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슬프거나 우울할 때 그런 나의 모습을 주위에 들키지 않기위해 애를 쓰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지만 이상하게도 슬픔이나 고통은 나누기보다는 혼자서 삭이는 편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역시 나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있어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내 앞에 닥쳐도 난 늘 “잘될꺼야” 하고 일단 마음가짐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할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 역시 긍정의 힘에 대해 힘주어 말한다.
교회 담임목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1999년도 타계 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휴스턴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영향력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실패할지도 모르는 그를 우려한 사람들은 그의 미래에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지만 그는 “ 나는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 라며 단 한번도 그 힘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결국 <조엘 오스틴>목사는 교회를 매주 3만명 이상 찾아오는, 아버지시절에 비해 4배이상으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회자가 되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전달하는 비중있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삶에 대하여 걱정을 하며 좌절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 힘들어 한다.
특히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질감을 쉽게 가질수 있는 이민생활에서 그 좌절의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좌절이던 희망이던 그것은 결국 마음의 선택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래전에 책에서 읽은 내용이 늘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은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인의 꿈은 대학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여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느덧 60이 되어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루지 못한 꿈을 늘 아쉬워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창가에 앉아 무심코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어린 손자가 집앞의 차고앞에서 놀고 있다가 집앞에 세워둔 트럭이 미끄러지면서 손자가 깔리게 됨을 목격한 것이였다.
그녀는 그것을 보는 순간 집 밖으로 뛰어나가 무서운 힘으로 트럭을 번쩍 들어올려 깔린 손자를 구해낸 것이였다.
그 순간의 그녀의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였고 과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설명 하기 힘든 없는 일이였기에 많은 신문지상에서 그녀의 기적같은 힘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60이 되어 인생의 꿈을 포기하고 살던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같은 힘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인간이 가진 무한하면서도 불가사의한 잠재력이라고 생각한 것이였다. 그 잠재력은 잠자는 사자처럼 나무그늘에서 자고 있다가도 언젠가 때가 되면 갈기를 휘날리며 앞으로 튀쳐나갈 수 있는 힘일것이다. 그녀는 꿈을 다시 키워 공부를 하였고 결국은 그렇게 바라던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나의 존재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린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잠재력의 파워를 진정으로 느끼고 인정할 수 있다면 삶의 방향은 더욱 더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보통 사람은 가지고 있는능력의 3퍼센트정도 밖에 쓰지를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7퍼센트는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더욱 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미국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바빴으며 여러가지면에서 여유가 없었다. 문학을 짝사랑 하기에 나는 늘 갈급해 했으며 내게 한번도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 문학에 대한 상사병으로 앓기도 했었다. 그러나 난 나의 남아있는 97%의 잠재력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내게 분명코 삶의 의미가 주어졌을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하였다.
나는 이루지 못한 꿈을 그저 아쉬워 하기만 하는 여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바다에 대한 동경으로 길을 떠난 청년처럼 나는 이미 길위에 올라 서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로 가기위한 여정은 얼마나 많은 모험과 환상으로 내 삶을 가꾸어 줄지 벅찬 느낌으로 그 길을 즐겁게 그러나 묵묵히 걷는다. 그 벅찬 느낌을 한문장 한문장마다 내 영혼을 담기위해 애를 쓸 것이고 땅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깊이가 있는 글이 되기에 나의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내게 남은 날의 첫날처럼 기쁜마음으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일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것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인생이란 참으로 황홀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우주속에서 삶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내가 원하고 가고자 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나는 아침부터 일터로 나가 종일 바빴으며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면 차분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단 한줄의 글이라도 쓸수 있는 이 순간을 마냥 사랑한다.
창너머에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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