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잘 지켰더라면 어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포괄적 헬스케어 개혁안 통과’라는 역사적 과업 실현을 자축하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현을 눈앞에 두었던 개혁안은 불과 며칠 새 손 쓸 겨를도 없이 빈사상태에 빠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지난 주 매사추세츠 연방상원 선거 이후의 일이다.
상상도 못했던 패배로 민주당의 상원 60석이 무너진 이변이긴 했지만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우왕좌왕 분열하는 민주당의 대응자세다. 상원에서의 개혁안 저지를 공약한 스캇 브라운 공화당 후보의 승리 확정 후 첫 반응은 책임공방과 헬스케어 개혁안 때리기였다. 오바마의 첫 언급도 개혁안 추진을 “서두르지 않겠다”였고 상하원 지도부의 불화가 담장 밖까지 흘러나왔으며 재선 앞 둔 중도파들은 “난 반대야”라며 너도나도 거리두기에 급급했다. 밤샘 협상과 주말 투표를 강행하며 1년 가까이 백악관과 민주당이 전념해 오던 ‘최우선 국내 어젠다’가 순식간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지난 주말부터야 태도를 바꿔 스피치와 인터뷰를 통해 개혁 실현을 재다짐한 오바마는 27일 국정연설에서도 개혁안을 강력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 입법일정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내가 오늘밤 연설을 마칠 무렵 더 많은 미국민들이 보험을 잃을 것이다. 금년 중에만 수백만이 잃을 것이다. 적자는 늘고 보험료는 오르고 가입자 부담도 늘 것이다. 환자들은 치료를 거부당하고 소기업주는 직장보험 제공을 중단할 것이다. 난 이런 미국민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의원 여러분들도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라며 의회에 입법실현을 촉구했다.
11월 중간선거 승리위한 불씨를 발견한 공화당은 개혁안의 사망선고 카운트다운을 한 목소리로 외쳐대고 있다. 그러나 개혁안의 부음쓰기는 아직 이르다. 매사추세츠의 패인이 헬스케어 개혁안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이미 개혁된 매사추세츠 주 헬스케어는 연방 개혁안과 유사한데 이번 선거 직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68%는 이 제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헬스케어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정치가도 유권자도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언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언제 누가 추진하든 반대는 있게 마련이다. 지금은 미 노인들의 생명선으로 간주되는 메디케어가 입법화되었던 45년 전에도 보수여론의 반대는 지금 못지않게 거셌었다.
헬스케어 개혁은 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확대해석으로 던져버리기엔 너무나 중요한 국가 정책이다. 매년 4만명이 보험이 없어 사망하고 지난 한 해 보험금 지급 상한선을 넘겼다는 이유로 보험에서 쫓겨난 중병환자가 2만여명에 이른다. 미국인의 대다수가 현재 ‘만족한’ 직장보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보험료와 종업원 부담액이 각각 130%씩 인상되었으며 금년엔 40%의 고용주가 종업원 부담을 더 늘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족한 현재의 보험이 지속되기 힘들다는 의미다.
헬스케어 개혁안에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보험사 규제에서부터 직장보험을 제공하는 소기업 고용주에 대한 세제혜택에 이르기까지 서민의 가계와 직결된 혜택이 적지 않다. 개혁안은 경제대책을 외면한 한가한 정치이슈가 아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시급한 민생대책이다. 그러므로 경솔하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바른 국정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민주당에겐 정치적으로도 개혁안 실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민주당은 찬성표를 던졌다. ‘헬스케어 개혁 정당’이다. 1년간 몰두하고서도 성사에 실패한, 실적없는 무능정당이 되겠는가. 사회정의를 위해 소신있게 통과시킨 후 유권자들이 숙지하지 못했던 혜택을 충분히 설명하여 설득시키는 ‘일하는 대변자’가 되겠는가.
개혁안 통과를 위한 몇 가지 옵션들이 떠돌고 있지만 최선의 선택은 2단계 플랜으로 압축된다 : 먼저 포괄적 상원개혁안을 그대로 하원에서 통과시킨 후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입법화시킨다, 추후 양원안의 차이는 별도 수정법안으로 해소시킨다.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상하원 절충안을 만들어도 60석의 붕괴로 상원 재통과가 힘들기 때문이다. 별도 법안은 상원에서 예산관련 입법과정에서 쓸 수 있는 조정(reconciliation) 절차를 동원하면 단순 과반수 51표 찬성만으로도 통과된다. 공화당은 변칙이라고 펄펄 뛰지만 부시의 부유층 감세안 통과 등에서 공화당도 여러번 썼던 비상수단이다.
지난 주말 47명의 미 대학교수들이 백악관과 의회에 개혁안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발송했다. 역사적 개혁실현이 눈앞에 있다고 전제한 이들은 헬스케어 개혁안의 조속한 실현방법을 이렇게 제시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시각을 가진 우리들은 한 가지에 합의했다 - 최선의 선택은 확실하다 : 상원안을 통과 시켜라, 그리고 ‘조정’으로 추후 개선하라”
헬스케어 개혁안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살 길’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오바마도 국정연설에서 보다 적극적인 리더십을 약속했다. 이젠 의회의 용기있는 결단만이 남았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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