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반말.막말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박차고 나와 희망의 새 출발을 다짐해 보는 2010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새로운 10년의 출발점에 서서 한인사회가 재도약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다시 돌아본 한인사회의 자화상은 성숙하고 바람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공공의식 부재와 준법문화 결여 등 여러 면에서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바꾸고 변화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본보는 새해를 맞아 신년 특별기획 시리즈 ‘업그레이드 한인사회’를 게재한다. 주변의 작은 일부터 ‘이것만은 이제 고치자’는 부분을 과감히 지적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노력을 통해, 올 2010년을 커뮤니티의 품격을 높이고 정신적 인프라를 다지는 해로 삼아 한인사회의 더 큰 도약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센터빌에 거주하는 이 모(46)씨는 직장 동료들과 식당에 가면 가끔 자리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음식을 서비스 해주는 웨이트리스 여성들과 나누는 대화가 무례를 넘어 도를 지나칠 때는 자신이 잘못을 범한 것처럼 좌불안석이 된다.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찾은 식당에서 점잖게 동료들을 충고하자니 분위기를 깰 것 같고, 그냥 듣고 있자니 양심상 너무 거북하고...
이씨는 “우스개를 한답시고 웨이트리스 여성의 용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겉으로는 칭찬같이 들려도 참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서 횡행하는 반말과 막말은 주로 자신이 힘이 있다고 착각(?)하거나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들을 대할 때 주로 나타난다. 직장생활이나 대인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주눅 들어 있다가 약자(?)를 보면 ‘너 잘 만났다’는 식의 심술이 동한다.
영어에서는 별로 존칭을 쓸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 오래 살면서 한국식 예절을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고 싶어도 엄연히 대화에 위 아래가 있고 특히 손님이나 외부인을 존중해주는 예절 문화를 평생 몸에 익히고 살아온 나이 지긋한 분이 그런 언사를 하면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 1.5세나 2세 같이 말은 영어에 익숙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미국식 예절을 잘 알고 있는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막말에 난감할 뿐이다.
애난데일에 사무실이 있는 김 모씨는 예기치 못한 무례한 전화를 받고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꼭 자신을 타겟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물벼락을 맞은 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통화를 할 때 그냥 참아 넘기기 어려운 케이스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이쪽 이름을 먼저 묻는 경우.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용무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당신 이름이 뭐요’하고 물을 때 참 황당하다”고 말했다.
타민족에 대한 비하도 꼴불견인건 마찬가지.
한 전직 한인단체장은 “평소 인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한 인사가 공식석상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깜둥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해 놀란적이 있다”며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타민족 종업원들을 비하하는 언어나 행동도 이제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에서의 언어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에 온지 6개월 됐다는 한 유학생은 “미주 한인사회의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욕설과 인신공격 등이 담긴 악플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국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 내 언어도 순화되고 좀 더 세련돼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훼어팩스에 거주하는 박 모씨는 어느 날 10살된 아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아빠, 나 한국말 할 때 아빠한테 꼭 ‘요’자 붙여야 되요?” “암, 그렇게 해야지.” 대답은 명쾌하게 주었지만 박씨는 속으로 떨떠름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통로는 엄마, 아빠가 거의 유일한 통로인데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부부간에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듯했다. 존댓말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말끝마다 ‘요‘자를 붙이려니 힘들만도 했다. 박씨는 아내와의 대화 방식을 어떻게 바꿀까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가족성장상담센터 소장 이광복 목사는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관건”이라고 처방을 내렸다. 마음에 품은 생각이 입술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먼저 태도를 바꾸기 전에는 서로 사랑하는 한인사회를 만들어가기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오 목사는 “한인들이 인정받는 일에 매우 굶주려 있는데 오히려 세상은 반대로 흘러 안타깝다”며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에게 의도적으로 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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