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수지말이야 걔 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새로 시트를 샀는지 비닐포장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자꾸 앉으라는데 비닐포장을 벗겨내면 닳는다고 애지중지하는 그 시트에 내가 어떻게 앉겠어?” 지혜가 나를 보고 그 말을 하면서 가당찮다는 듯이 웃었다. “어떤 시트인데 그래?” “그냥 싸구려 러브시트야. 자기 시트 자랑하려고 일부러 오라고 불렀나봐. 자기 서방인지 애인인지 몇 년째 소식끊고 언제올지 모르는 그 사람이 요다음 찾아오면 그때 쓸거래요.”
친구 지혜는 나하고 좀 떨어진 곳에 살지만 수지는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 사는 젊은 여자였다. 가끔 나를 보면 본토 발음으로 “내사 마 뼈가 뽀사지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 얼마나 힘든 일을 하길래 그러나 싶어 하루는 지혜한테 그 말을 했더니 엄마야, 너한테도 그런말을 해? 그러면서 색쓰는 거야 했다. “색쓰는 소리라니?” “생각해봐 그 남자하고 잠자고 나서 내사마 뼈가 뽀사지는 것 같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속닥거렸으면 아직도 그 소리를 입에 달고 있어? 백화점에서 캐쉬어 보는데 힘이들면 얼마나 든다고 뼈가 뽀사질 것 같다고 그래? 걔가 무슨 소릴해도 앞으로 곧이듣지 마. 나보고 햄요, 햄요 해서 이뻐해줬더니 아주 웃기지도 않는 애야.” 햄요는 경상도 말로 형님요 라는 말이다. 지혜 말이 그 남자는 본처가 있는 사람인데 어느날 갑자기 소식을 끊고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앞에서 한번도 거짓말 하지않고 순전히 자기 때문에 미국까지 들어온 남자가 그렇게 할때는 분명 무슨이유가 있을거라면서 몇 년전 그날, 오늘 저녁에 오겠다고 말하던 그말을 확실히 믿고 지금까지 기다린단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애야.” “그정도면 직장에 누구를 보내 알아보면 되잖아?” “실리콘밸리에 전자회사가 어디 한두군데야? 다 알아봤겠지. 그런데 아무도 그사람 이름을 모르드래. 도깨비하고 살았지. 애가 아주 맹해” 맹한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남편을 잃고 2년동안 혼자 지내면서 때로 남편의 더운 입김이 생각나고 길에서 대머리까진 남자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그 나이에 소식없는 애인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덜렁 남편 하나만 믿고 미국까지 따라온 아내가 직장을 의심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는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덜컥 죽고 나는 명함 하나를 들고 상무직으로 일했다는 실리콘밸리 회사로 찾아갔다. 그런데 맙소사! 그곳은 전자회사가 아니고 바로 가내수준의 창고 같은 조그마한 자영업이 아닌가. “우리는 보다싶이 회사가 아닙니다. 보험같은건 생각지 마시오.” 남편은 그것을 감추려고 그랬는지 처음부터 렌트비가 아주 싼 저지대에 방을 얻었다. 내가 알수없는 것은 그러면서 무슨 벼락감투가 기다린다고 미국병이 들어 교사직까지 버리고 미국행을 결심했는지 모를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의심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민박사라는 사람이 누군지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민박사라는 절친한 친구가 직장을 잡아주었다고 했고 가끔 심심찮게 민박사 집이라면서 오늘 저녁 술을 먹고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거기서 잔다고 전화가 왔다.
남편은 수학교사였고 꼼꼼하면서 부처님같이 착한사람이었다. 남편의 좋은점은 학교에서 일어난 어떤 스트레스도 절대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 아, 있다. 딱 한번 술을 먹고 들어와서 지나가는 소리로 어느 여학생 얘기를 했다. 남편은 당시 변두리 여고에서 3학년을 가르켰는데 어느학생이 지독하게 바보드란다. 그래서 그 실력으로 어떻게 학교는 들어왔느냐니까 “똥통학교니까요.” 하고 말하드란다. “그런데 애 얼굴을 가만히보니 당신같이 남자를 확 끌어당기는 것있지?” 이상하게 남편은 그때 말하면서 갑자기 봉곳히 솟아오른 자기하체를 손으로 감추었다. 그 뒤 몇 년있다가 남편은 느닷없이 미국대사관에서 힘센통역관으로 있는 오빠를 무조건 졸라대드니 결국 이민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꼭 1년후에 남편은 여기와서 죽었다. 그것도 사실 남들앞에 말하기 곤란하지만 갑자기 어느 일요일 내 배위에서 가뿐숨을 헐떡거리던 남편이 알몸둥이로 거짓말같이 그만 숨이 끊어졌다. 남의 얘기로 듣던 복상사였다. 나는 죽은 남편도 남편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쇼핑몰에서 뜻밖에 만난 지혜의 권유로 실리콘밸리에서 세탁소 일을 배웠다. 그리고 아파트를 그 근처로 옮겼던 것이다.
갑자기 지혜가 나를 보고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쟤 보통내기가 아니야? 너도 앞으로 쟤 조심해.” 그리고는 문쪽을 향해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민애자, 너 까불면 재미없어! 미국온지 4년밖에 않된 애가 공자앞에서 문자쓰고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얘.” “수지 본이름이 민애자야?” “그래, 원래 민씨들이 머리가 다 좋은데 쟤만 별종이야. 몇 년간 소식없는 기둥서방 오늘 내일 당장 올것같이 기다리는 년이 더 웃기지 똥통학교를 나와가지고 애가 아주 맹해. 쟤 남자하고 둘이서 찍은 사진을 봤는데 얼굴 생긴 것은 괜찮은데 혼자만 살짝 알어 대머리야. 그래서 별명이 문어대가리래.”
아니,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문어대가리?! 남편 별명이 문어대가리다. 가만있어. 똥통학교에 민박사? 연애박사?! 그럼 수지가 바윗고개에 숨어서 기다리는 님이 바로 죽은 우리 남편이란 말인가? 나는 갑자기 가슴이 마구 떨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죽었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야. 나는 1초동안에 수백가지 생각이 범벅으로 떠올랐다. 한 여자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너무 큰 행복을 결코 뺏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 아. 나는 순간 옆에서 뭐라고 지꺼리는 지혜 말소리가 멀리서 깔깔거리고 놀리는 바로 남편 웃음소리처럼 쩌렁쩌렁 울리다가 그만 쓰러져버렸다. 너무분하다. 마지막까지 여자를 속이는 남자라는 나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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