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어느 따뜻한 날 한 양치기 소년이 느티니무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 어느 귀족 부인이 하인들을 데리고 지나다가 이 소년을 보았다. 지난 해 이 나이쯤 된 아들을 병으로 잃은 귀부인은 잠든 이 소년이 너무도 잘 생기고 귀여워서 데려다 키우고 싶은 생각이 났다. 하인이 소년을 깨우려고 했지만 부인은 한참 달게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지 말도록하고 소년이 깰 때까지 지다렸다. 그런데 소년이 너무 깊이 잠들었는지 얼마 동안을 기다려도 깨질 않는 것이다. 부인은 더 이상 오래 기다릴 수 없어서 아쉬운 맘으로 자리를 떠났다.
얼마후 도둑들이 지났갔다. 아랫 마을 어느 집을 털어서 한 보따리 씩 지고 가는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이 아이가 우리들을 본 것 아니야?” “아예 죽이고 가자.” 그래서 자고 있는 아이를 막 죽이려고 하는데 한 도둑이 말렸다. “아까부터 봤는데 이 아이는 자고 있었어. 우리 길도 바쁘니 그냥 가자.” 얼마후 낮잠에서 깬 소년은 자기가 자는 동안 귀족 부인의 양자가 될 뻔 했던 것도, 떼 도둑들에게 죽을 뻔 했던 것도 모른 채 무심하게 양들을 몰고 자기 움막 집으로 갔다.
<이야기 둘>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교통 티켓을 받고 법원에 벌금을 내려 갔더니 접수부 창구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원문은 잊었지만 “티켓 받은 것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티켓을 받을 “뻔” 했습니까.” 하긴 그 자리에 경찰이 없었기 망정이지 마침 있었더라면 꼼짝 없이 티켓을 받을 뻔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오늘 아침도 운전도중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빨강 시그날에 길을 건넜다. 영락없는 티켓깜이였지.
<이야기 셋> 얼마전 몇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가 좀 늦었나 싶게 식당에서 나왔다. 주차장에서 마악 차 문을 여는데 시커먼 녀석들 둘이 튀어 나와서 권총을 들여 댔다. 말로만 듣던 권총 강도들인 것이다. 이런 것 여러번 당해본 K 선배는 평소 준비했던 잔돈푼을 얼른 꺼내 주었는데 그 방면에 훈련이 안된 나는 어물쩍 거리다가 지갑에 차동차까지 뺏겼다. 그날 따라 지갑에는 카드와 수표외에 현금만 2천 달러. 신고 즉시 경찰차 몇 대가 들어 닥치고 헬리콥터가 뜨고 했지만 녀석들이 얼마나 잽싸게 도망갔는지 이미 흔적도 없다. 늦은 시간까지 있어서는 안되는 곳인데.., 그날따라 현금을 왜 지갑에 많이 두었지? 뒤 늦은 후회가 막급이다. “참 재수 없었네!”
<이야기 넷> 안그래도 뒤숭숭한 연말 분위기인데 우리집은 요즘 크고 작은 사고 연속이다. 가라지 도어 스프링이 끊어지질 않나, 멀정하던 현관문 열쇄가 작동이 않되고, 집안 히터가 고장이더니, 며칠 전에는 아내가 계단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잠이 안온다고 한 밤중에 일어나서 이층 끝방에서 성경을 읽었는데 새벽 무렵 복도 불도 않켜고 더듬어 침실로 찾아 들어 온다는 것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계단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카펫으로 덮힌 계단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격으로 생긴 통증은 심해서 다음날 아침 병원 응급실 신세까지 져야 했다.
<이야기 다섯> 강도 사건이 있은 후 3일만에 경찰에서 내 차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지갑도 시트 밑에 발견되었는데 현금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현금이 그대로 있다고?” 전혀 믿기지 않는 소리지만 하여간 지금 당장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내 차는 어느 주택가에 얌전히 파킹되어 있고, 그 곁에서 경찰 몇 명이 “지갑에 왜 돈이 고스란이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추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들이 내 차를 타고 도망 하던 중 공교롭게 워터 펌프의 호스가 터졌던 모양이다. 호스가 터지면서 수증기가 솥구치니까 마침 머리 위에는 헬리콥터가 떠서 범인을 찾고 있지, 경찰 순찰차는 좌우에서 모여들지 하니까 녀석들이 기겁을 하고 차를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 와중에 지갑을 못 챙긴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수도 있구나 싶어 많이 웃었다. 아내는 그 찾은 돈 잃은 셈치고 절반만 달란다.
경찰로부터 차를 찾아 오면서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읽어 주신 낮잠 자던 목동의 이야기를 새삼 기억했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행(幸)과 불행(不幸)이 내가 모르는 순간에 아슬 아슬 스쳐갔을까? 강도 당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있을 수도 있었고 계단에서 넘어진 것보다 더 큰 사고가 있을 뻔 했는데 그런것 들은 용케도 피해졌고 반면에 좋은 것은 거의 다 주어져서 오늘 이렇게라도 산다. 또한 맑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어서 인생이지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내 마음은 여유롭다. 전화위복(轉禍爲福). 금년에 좀 힘들었지만 내가 겪은 이 어려움은 다음에 있을 좋은 일의 디딤돌이다 싶어 내년을 기다린다. 2010년에는 얼마나 더 신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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