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배가 고프면 작은 종을 여러 개 흔드는 요령소리가 어김없이 들린다. 자기 귀에 익숙한 그 요령소리는 방울처럼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그는 무료 급식소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수잔나 주려고 항시 주머니에 감추고 나오던 빵을 그자리에서 먹어버렸다. 아파서 꼼짝못하는 수잔나는 오늘 병원 응급차에 실려갔다. 그러나 며칠지나면 수잔나는 “고맙지 뭐유?”하고 활짝 웃으며 나타날 것이다. 고맙지 뭐유라는 옛날에 유행했던 그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그는 종을 땡땡 울리며 언덕을 올라가는 전차를 타겠다고 줄을 서있는 관광객들 앞에서 한나절 동안 구걸했지만 겨우 동전 하나밖에 얻지 못했다. 동전을 빤질빤질 윤이 나도록 주무르며 그는 미션 16가쪽으로 어슬렁 걸어갔다. 남미 사람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자기 같은 힘없는 종족이 지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홈레스들의 텃세는 사나운 동네 개보다 더 심하다. 특히 힘센 검은 동료들은 난폭하기 짝이없다. 케빈이 자기를 볼때마다 삐딱한 족속이라고 욕을 해대지만 그는 모른척하고 지나친다. 누구나 자기 친구나 조상을 욕하면 화가 나지만 한국전 때문에 목발신세를 지고 있는 케빈은 이상하게 밉지않다.
오, 수잔나 노래부르자. 그는 속으로 노래 부르면서 수잔나 죽으면 안돼! 하고 말했다. 늙은 수잔나는 자기 아버지가 하와이 이민1세 한국 사람인데 자기 이름은 자야, 라는 끝자만 생각나고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건물 모퉁이에 누워 몸이 아파 꼼짝못하는 수잔나를 위해서 그는 음식도 챙겨주며 가장 유일한 말벗이었는데 오늘 새벽 병원차에 실려갔다.
그는 노래를 좋아하는 수잔나가 꼭 갖고 싶어하는 그 키타를 사주려고 65불을 몰래 간직하고있다. 미션에 있는 전당포 유리창에 아직 팔리지 않은 키타가 80불이라는 가격표를 붙이고 걸려있다. 이제 15불만 더 모으면 수잔나가 그렇게 좋아하는 키타를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서 오나? 하는 여러가지 설법이며 교회 설교도 있지만 그는 수잔나 생각을 하면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용케 1불을 더 만들었다. 밤에 처마 밑에서 잠을 잘 때 주머니를 뒤지는 나쁜놈들 때문에 이 돈은 수잔나가 병원에서 나올때까지 단단히 감추어야 한다.
수잔나 죽지말고 살아야 돼. 홈레스 쉘터에 하룻밤 잠을 자려면, 메인 오피스에 아침 9시전에 가서 싸인을 하고 낮 2시반에 다시 확인 싸인을 하고 그리고 7시까지 거기가서 기다렸다가 추첨을 뽑아 10명정도만 잠을 잘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동료들이 아예 가지 않으려고 한다. 한번 홈레스가 되면 직장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외항선원 생활을 하던 자기가 샌프란시스코 부두에 와서 몰래 시내로 몸을 감춘 것은 순전히 안개 때문이라고 그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희뿌연한 안개는 때로 사람 욕정을 알 수 없게 건드리고 도시의 경사진 구석까지 속삭이며 스며든다. 그리고 금문교 아치와 밝은 불빛들을 비밀스럽게 감싸면서 사람을 막막한 어떤 공허로움에 젖어들게 한다. 그가 불쌍한 수잔나 인생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듯이 사람들은 온전한 한 사람이 홈레스로 전락하기까지 기나긴 그 고통을 아무도 모른다.
자기 귀에서 다시 종소리가 난다.
그는 급식소로 가서 음식을 먹으려고 부지런히 걸어 마켓스트릿을 막 건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때 도로 저 밑에서 퍼레이드 특유의 풍선을 매단 차가 보이고 한복입은 여자들이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앞장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한국의 날 축제구나.
주위에 한국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고함을 질렀다. 자기 앞에서 한국전통 가무악의 장단에 맞추어 예닐곱의 여자들이 땟갈고운 한복을 입고 부채를 공중으로 멋지게 휘두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하늘에서 금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 장단이 그의 귀를 둥둥 울렸다. 그 부채춤은 자기를 안고 가슴을 주무르며 활짝 웃음짓는, 오랫동안 잊고있던 바로 어머니 얼굴이었다.
엄마요! 그는 눈물처럼 콧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부채춤을 출때는 밝고 고운 종소리가 울렸다. 은방울 같은 여러 개의 작은 종소리에 맞추어 색색가지 종이 앞에서 어머니가 너울너울 춤을추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너무 좋아 깔깔거리며 웃던 꿈속 같은 아련한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요!” 그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딱을 생각도 하지않고 소리내어 어머니를 불렀다. 배가 고플 때마다 자기귀를 울리는 작은 종소리는 바로 그리운 어머니 목소리였다.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둥둥울리는 북소리가 벌떡거리는 가슴에서 눈물이 되어 똑같이 둥둥 울렸다. 어릴때의 그립던 그 환영과 함께 그렇게도 간절히 보고싶은 어머니 모습에 그는 넋나간듯이 서서 너무 보고싶고 안타까운 마음에 뜨거운 물이 자꾸 차올랐다. 어허,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몸. 샌프란시스코는 안개가 깔린 깊은 밤이면 붕, 울리는 뱃고동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는 뱃고동 소리보다 자기몸을 송두리째 휘감는 그 안개가 너무 좋다. 자기 귓속에서 종소리가 자꾸 울렸다. 울려라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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