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Bone of Space / 허공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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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i has no tree
Clear mirror has no stand
Originally nothing
Where is dust?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티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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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마음에 점을 찍은 후 [점심/點心 후],
오피스 바로 옆에 붙은 마틴 루터 킹 라이브러리에 들러
우리말 책들이 있는 서가에 들러봅니다. 가끔 눈에 띄는
책들이 꼽혀있기도 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 느끼며, 뭔가
마음 점이 찍힐만한 책을 찾습니다. 그럼 그렇지! 자그마한
시집 한 권이 “허공의 뼈를 타고”란 제목으로 내 안에 쑥
들어옵니다. “숭산(崇山) 스님 선시(禪詩)”라는 부제도 확
눈에 띕니다.
최윤정 옮김이라?
숭산 스님 선시(禪詩)를 따로 ‘옮길’ 필요가?
그렇습니다. 원래 영문으로 쓰신 선시였답니다.
숭산 스님이 ‘짧지만 긴박한’ 투로 쓰신 영문 선시집의
원제는 참으로 경천동지의 ‘숭산스러운’ 제목이었습니다.
“Bone of Space: Zen Poems by Seung Sahn”
책갈피를 넘기자마자,
존재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그윽한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허공의 뼈(許空骨)의 표면상의 뜻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이해하는 것이다.
좀더 깊은 뜻은 할(喝)! - 이것이 허공의 뼈일까?
그리고 속의 참뜻은 허공의 뼈를 얻자는 것이다.
즉, 두두물물(頭頭物物)은 이미 완전하다. …….
버들은 푸르고 꽃을 붉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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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i has no tree
Clear mirror has no stand
Originally nothing
Where is dust?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티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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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4부에 걸쳐 구성된 “Bone of Space”는,
숭산 스님이 수백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쓰신 영문 선시(禪詩)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책 말미엔 허공골(虛空骨)이란 제목의 숙제가 하나
번듯한 선물로 들어 있습니다.
숭산은 이 “Homework”에서 선가에 두루 잘 알려진
육조 혜능의 선시를 아주 간결한 영어로 풀어 냅니다.
이 육조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선언은 오조(五祖)
홍인의 박학다식한 수제자 신수(神秀)의 시를 누르고
오조의 의발(衣鉢)을 전(傳)해 받게 되는 육조(六祖)
혜능의 진수 바로 그 자체입니다.
어느 날, 오조선사가 제자들에게 각자 게송을 하나씩
지어 올리라 명합니다. 이미 수제자로 육조의 대를
이을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이던 신수(神秀)는 다음과
같은 멋진[?] 시를 보란 듯이 남쪽 복도에 올립니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수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마음은 명경대와 같나니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라.
일자무식 혜능은 어느 동자가 소리 내어 읽는 신수의
글을 듣자마자 이는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내심
한탄합니다. 본래 글을 쓰지 못하는 혜능은 그 동자를
시켜 자신이 읊는 게송을 복도에 쓰게 합니다. 바로
그 시가 숭산 스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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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hi has no tree
Clear mirror has no stand
Originally nothing
Where is dust?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티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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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젊은 시절 오랫동안 내 방에 걸려있던 선시(禪詩)입니다.
붓글씨 잘 쓰는 지인이 선사했던 이 화선지 서체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과 느낌이 언제나 처음 아닌 처음처럼 다가옵니다.
그 생경한 익숙함에 늘 흠칫하곤 합니다.
그렇게 막연한 모름으로 그저 글귀 정도 이해하던
경지에서, 오늘 한가로운 점심 후, 또다시 숭산 조사의
할(喝)과 마주칩니다. “그대는 육조 혜능의 시를 누를 수
있는 그대만의 시를 지어낼 수 있는고?” 이렇게 달마 이후
78대 조사 숭산은 할(喝)과 방(棒)으로 우리를 다그치고
계십니다.
그리고, 미욱한 중생들이 궁구(窮究)에 시달릴까 염려한
나머지, 그 가없는 자비심에서, 한 말씀 힌트를 전하십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티끌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는
육조는 참으로 잘못 되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면, 없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Originally nothing.
Where is dust?” That was a big mistake!]
늘 희망찬 해탈을 약속하는 78대 조사 숭산의 말씀이
바로 내 귓가에 그 분 특유의 낭랑한 영어로 들립니다.
“If you finish this homework,
you will attain Buddha’s Dharma Light!”
그리고,
일부러 준엄하게 묻는 모습도 보입니다.
“허공의 뼈를 알겠는가? KATZ!”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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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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