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우리에게 백낙천(白樂天)이라는 그의 자(字)로 더 친숙하다. 시인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을 잘 나가고 있다가 어떤 사건에 상소문을 올린것이 월권 행위로 간주되어 탄핵을 받고 구강 (九江)지방,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의 한 고을에 사마(司馬)라는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거기서 몇년을 쓸쓸하게 지내는데 한 친구가 천리길을 멀다 않고 찾아왔다. 시인은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동안의 장안 소식을 듣고 다른 친구들 안부를 묻고 그리고 시도 같이 읊으면서 세월을 개탄하고… 그렇게 얼마를 지냈는데 이제 친구가 돌아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시인은 장강(長江) 기슭에서 서운한 맘으로 친구를 배웅한다. “양자강 언저리에/ 밤에 길 떠나는 손님을 전송하나니/ 단풍잎 물들고/ 물억새꽃 희게 핀 쓸쓸한 가을날이였다..” 장편시 비파행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인이 말에서 내리니 친구은 이미 배 안에 앉아 있었다. 배 안에서 둘은 서로의 이별이 아쉬워 술잔을 들었으나 그런 분위기에서 흥이 날리없다. 다만 무심하게도 강 위에 비췬 달이 수면에 적셔지고 있었을 뿐.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비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곡이 끝난 후 시인은 비파소리 나는 곳을 향해서 누구시냐고 조용히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이윽고 소리가 있던 쪽으로 배를 옮기여서 여러 차례 청하고나서야 비파의 연주자는 겨우 모습을 보였는데 그녀는 그 때까지도 비파를 안고 있었고, 소매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시인이 다시 한 곡을 부탁하자 연주자는 곡을 켜기 시작했는데 “줄마다 억눌린 소리를 내고 소리마다 생각이 스며 있어/ 흡사 평상시 펴지 못했던 생각을 호소하는 듯 했다..” 그 다음 “굵은 현은 떠들석한 소리를 내어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듯했고/ 가는 현은 하느작거려 마치 속삭이는 듯했다. 때로는 꽃 아래서 한기로이 우는 꾀꼴새 소리 같았고/ 때로는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 샘물의 여울 소리와 같았다.” 그러다가 갑짜기 곡이 멎었는데 시인은 그 때 “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가 있는 것보다 더 한스럽다” 고 표현하였다.
한동안의 정적이 깨지고 이번에는 “은항아리 깨지며 물이 쏟아지듯/ 또한 갑옷 입은 기마 병사가 창칼을 휘두르듯 소리가 울린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 여인이 비파 중심에서 크게 현을 긁자/ 네 개의 현이 일시에 울리며 비단을 찢듯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四鉉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참으로 명인의 경지로구나! 시인은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이쪽 저쪽에서모여들었던 배들도 모두 무엇에 홀린듯 곡에 취해서 말이 없는데 눈에 띄느니 오직 강 가운데로 비치는 가을의 하얀 달빛 뿐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연주를 마친 여인은 옷 매무시를 바로 하고 자기 신세를 이야기를 했다. “저는 원래 서울(長安) 여자입니다. 열 세 살에 비파를 배웠는데 교방에서도 제 일급에 꼽히는 명수가 되었습니다. 너무 연주를 잘해서 스승이 항상 감탄했고 인물 또한 고와서 뭇 미인들의시샘을 받았습니다. 귀공자들이 다투어 선물을 주었고, 곡이 끝날 때 마다 선물로 받는 비단은 혜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금년은즐거운 웃음 속에 보냈고 내년 또한 마찬가지겠지 (今年歡笑復明年:금년환소부명년). 이렇게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로 몇 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벙 덤벙 세월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군에 가서 생사를 모르게 되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어느새 곱던 용모는 이미 시들게 된것이다. 손님이 없으니 수입도 없고 그동안 저축한 것도 없었으니 이제 오갈대 없는 늙은 여자가 된것이다. 그래서 한 몸 의탁하려고 어느 장삿꾼의 아내가 되었는데 여인은 한탄한다. “남편이 돈벌이만 중히 여길 뿐 부부 정 따위는 하찮게 여깁니다. 항상 돈 벌려고 나돌아 다니는 남편은 지난 달에 부량으로 차(茶)를 구입하려 떠났습니다. 그 뒤로 나는 강 어구에서 홀로 배를 지키고 있습니다만 배를 에워싼 밝은 달빛도 강물도 그저 나에게는 싸늘하기만 할 뿐입니다.한 밤에 문득 꿈꾸는 것은 젊었던 시절의 추억. 꿈에 흘린 눈물이 화장한 연지와 함께 하염없이 흐릅니다.”
여인의 신세 타령에서 시인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자기도 이 시골에 쫓겨 와서 밤낮으로 듣는 것은 “피 토하며 우는 두견새와 슬퍼 우는 원숭이의 소리.” 그런중에 오랫만에 너무도 좋은 음악을 듣은 것이다. 그래서 한 곡조를 더 청해서 듣는데 다음곡은 더 처절하고 슬퍼서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 가운데 가장 운 사람이 누구였던가. 강주 사마인 나의 푸른 옷깃은 눈물로 흠뻑 젖었다(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청삼습).” 이렇게 詩 비파행은 끝을 맺는다.
백거이가 구강에서 보낸 기간은 5년이다. 그후 중앙 정부로 다시 복귀하지만 백거이 생각에 가장 암담했던 바로 이 때가 사실상 그의 문학에서 가장귀중한 시기였던 것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멘스를 그린 장한가(長恨歌), 위에서 인용한 비파행, 그리고 당시 정치를 풍자한 신악부(新樂府) 등 5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구강에서 쓰여지고 다듬어졌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바로 성탄절로 이어지고 그리고 연말 연시가 된다. 모두 힘든 올 한 해였다. 그러나 힘들고 고단했어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것이 바로 세월이 아닌가? 아무리 어려워도 행복은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 시인 백거이가 친구를 배웅하듯 우리도 금년한해를 세월이라는 장강(長江)에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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