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소책자는 워싱턴을 여행하면서, 또는 이곳에 살면서 필요한 생활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을 보기 위해 훼어팩스의 한 대형 식품점에 들렀던 박 모씨는 입구에서 무료 책자 하나를 우연히 집어 들었다. 레터 용지 반절 크기에 두께는 30쪽 남짓했지만 고급 종이에 다양한 칼라 사진이 수록돼 쉽게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워싱턴 성광교회가 제작한 ‘워싱턴 이민생활 가이드’였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관광 정보에서부터 자녀들을 위한 생활정보, 이민생활 안내 등등 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워싱턴에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는 그런대로 요긴하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느냐 보다는 커뮤니티에 뭔가 서비스를 하려고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한인교회들이 달라지고 있다.
자신의 성 안에서 안주하는 양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복음의 본질은 고수하되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문턱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작업이 진작에 필요했다고 지적했던 사람들은 한인교회의 이러한 변화 노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비록 교인 감소를 막아보자는 실제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뒤에 있기는 해도 세상과 ‘소통’의 기회가 커졌다는 측면에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성광교회의 원치민 간사는 “가이드북을 1만부 정도 만들어 배포했는데 의외로 관심을 끌었고 전화도 많았다”고 말했다. 교회를 알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민 초기의 한인들에게 도움을 제법 준 것 같아 보람이 있었다는 그는 “당장 ‘전도’라는 열매가 많지 않아도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한인천주교회가 이달부터 시작한 대학 진학 세미나는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벌써 화제다. 매달 한 차례씩 다른 분야의 교수들을 초청, 대학 진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 세미나를 위해 20명의 강사들을 확보해 놓을 만큼 정성을 들였다. 지난 14일 성당 교육관에서 처음 열린 세미나는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이 모아져 주최 측은 크게 고무됐다.
성당 산하 한국학교 교장인 최규용 교수(메릴랜드대 화학 생명공학과)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세미나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한인 2세들이 미국사회에서 성공하는 인재가 되도록 길러내기 위함”이라며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음을 강조했다.
한인사회가 느끼는 ‘교육 정보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섬김이라는 인식이 교계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교실 운영이나 오케스트라 창단 붐도 과열 우려가 있지만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대형 교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외부에도 개방해 청소년들에게 배움과 연주의 기회를 주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온누리드림교회는 크리스챤드림 청소년오케스트라를 조직, 연령별로 운영하고 있는데 수준 있는 전문 음악인들의 지도와 잦은 연주 기회, 저렴한 비용 등으로 큰 인기다. 또 워싱턴중앙성결교회가 매주 토요일 운영하는 ‘뮤직아카데미’도 드럼, 기타 등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흥미를 느끼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악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밖에 베다니장로교회는 매년 지역 주민들을 초청한 가운데 ‘커뮤니티 데이’를 개최, 미 주류사회와의 거리를 좁히고 한인 교회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밖에도 평화나눔공동체, 굿스푼선교회, 밀알 선교회 등 교계 단체들의 노숙자 봉사, 라티노 거리 급식, 장애인 봉사활동 등은 ‘섬기는 한인사회’의 모습을 지역사회에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애난데일에서 열린 ‘코러스 축제’에서 라이터를 전도용으로 나눠준 거광교회도 화제가 됐다. “교회가 담배 피라고 라이터를 주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교회 측은 “라이터는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며 꼭 담배 필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거광교회의 한 관계자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며 복음 안에서 세상으로 브릿지를 건설하는 일을 계속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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