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에서 글이 난해하기로는 이상(李箱 1910-1937)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띄어쓰기 정도를 가볍게 무시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글이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같은 보통사람 수준으로는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다. 한 예로 ‘우주는멱에의하는멱에의한다’ (삼차각설계도).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1934년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시 ‘오감도(烏瞰圖)’는 첫 회인 제1호에서 같은 구절이 13번이나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그리고 제4호(환자 용태에 관한 문제)는 숫자를 반대 방향으로 쓴것. 암만 들여다 봐도 무슨 말인지? 무슨 통신부호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오감도는 30회 예정으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15회로 끝을 내야했다. “도대처 무슨놈의 잠꼬대냐?”는 것이다. 또 글이 연재되는 동안에도 신문사 학예부장이였던 상허(尙虛)는 아침 출근할 때 한쪽 주머니에는 ‘오감도’의 원고를 넣고, 다른 편 주머니에는 사직서를 준비하고 나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역시 천재는 첨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어느날 후배 한사람이 이상에게 물었다. “선배님 쓰신 글중 이 구절이 이해가 안가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후배의 묻는 태도가 맘에 안들었는지 이상의 대답이 퉁명스럽다. “임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후배가 하도 어이없어서 “아니, 선배님이 쓰시고도 그 뜻을 모른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니까 모르지. 나는 남이 쓴 글은 잘 알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꽃이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김춘수(金春洙 1922-2004). 그분의 글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쉬워졌지만 젊은 시절에 쓴 시, 주로 1940년대 1950년대 쓰여진 작품들은 보통 어려운것이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쓰면 항상 가장 가까이 있는 ‘보통 사람’인 부인에게 먼저 읽혔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이 “(글이 어려워서) 무신 소린지 통 모르것내요”하면 “암, 그렇지! 아무나 내글을 쉽게 이해하면 안되지” 흐믓하게 생각했고 부인이 읽어보고 “참 좋내요. 내 맘에 꼭 와닫내요” 하면 “어라! 잘 못썻구나”싶어서 원고를 뿍뿍 찣고 다시 썻다. 그의 지론은 시인은 독자보다 한 단계 위에서 사물을 성찰하는 것.
어느날 출판업자가 흥분되어 시인을 찾았다. “선생님 시집이 만부나 팔렸습니다.” 그 시절 시집이 만부나 팔렸으면 이건 대히트이였다. 그러자 김춘수 시인은 낙담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나?) “아니 선쟁님, 그럼 몇만부나 팔려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대답이 “한 두어부. 내 시를 이해할 사람이 두어명 밖에 안된다면... 그런데 만부나 팔렸다면 내 시의 수준이 그 만큼 낮다는 것이지.” 이번에는 출판업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난 뭐 먹고 살라고?).
정청광 시인의 서사시 ‘히로시마 콤플렉스’를 들추며 먼저 플라톤의 저서 ‘대화(Dialogue)’를 연상했다. ‘맥아더가 히로시마에서 제가백가와 소피스트를 살해하고 역사를 형장으로 끌고갔다.’ 서설이 이렇게 시작되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글은 이상과 비교될 정도로 난해하고 어려워서 또 첨부터 다시 읽게된다. 정청광 시인은 시인 이상이 그랬던것처럼 이제까지 통용되던 시의 구조적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아마 김춘수 시인처럼 시인은 독자 보다 한 단계 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런데 어려워도 좋다. 우리가 그 책을 쓰다듬어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사는 모습을 통해서 그의 시를 읽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시인 정청광. 아침 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온종일 기다린다. 그리고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한구절 한구절 시를 쓴다. 장사가 잘되는 날도 있고 안되는 날도 있다. 글을 몇장 쓰는 날도 아예 한줄도 못 쓰는 날도 있다. 부인이 지역 한인 회장이되고 또 평통회장을 해도 그런건 상관없다. 시인의 상상력은 이미 시공(時空)을 넘나들어 히로시마 이후의 인류의 희망가를 절창할 뿐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커가고 그의 시는 한장 한장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제 대서사시 히로시마 콤플렉스를 세월을 두어가며 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사는 모습이 이미 서사시의 한 부분인것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