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났던 자녀들은 귀향길 비행기표 예매를 서두르고 그들과 모여 앉을 명절 식탁에 오를 터키를 주문하느라 주부들의 마음이 바빠지는 계절…미 전국이 땡스기빙 모드로 접어들기 시작한 엊그제 빅뉴스 속에 파묻힌 두 개의 기사가 눈길을 잡는다. 둘 다 ‘굶주린 사람들’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다.
하나는 풍요로운 미국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한다. 작년 한 해 동안 4,900만명의 미국인이 먹을 것이 부족해 배고픔의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사상 최악의 재정적자에 시달리며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해도 아직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인 미국의 국민 6명 중 한명이 굶주렸다는 뜻이다. 16일 발표된 연방 농무부 연례보고서의 내용이다.
‘식품 불안정(food insecurity)’이라는 학술적인지, 정치적인지 모를 난해한 용어를 동원했지만 쉽게 말해 배곯는 빈민층에 대한 이 보고서가 작성되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 행정부 관리들의 철없는 발언 때문이었다. 미국엔 배고픈 사람들이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장 빈민구제단체들이 실상을 반영하는 증거를 들이대고 의회가 농무부에 서베이를 지시한 이후 제1차 보고서가 발표된 것은 1995년이었다.
물론 미국 내의 굶주린 인구는 그때도 있었고 언제나 있었다. 이번 보고서의 숫자가 사상 최고다. 주요 원인인 실업률이 7.2%였던 2008년 통계이니 실업률이 10.2%로 치솟은 지금은 굶주린 미국인이 6,000만 명을 넘어섰을 수도 있겠다.
같은 날 로마에선 유엔 식량정상회의가 열렸다. 날로 악화되는 세계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인데 정작 지갑을 열고 대책을 주도해야할 선진국의 정상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 기아는 새로운 현상도, 쉽게 해결될 과제도 아니다.
처음으로 세계식량회의가 열린 1974년, 미국대표로 참석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세계를 향해 약속했다 : “앞으로 10년 내 1984년까지는 남녀노소 누구도 굶주린 채 잠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아니라 35년이 지난 지금 굶주린 인구는 근절되기는커녕 무섭게 증가했다. 전세계 67억 인구중 10억명이 매일 주린 배를 안고 잠을 청하고 있다. 굶주림으로 인한 어린이 사망률은 매 5초마다 한명 꼴이다. 여러분이 이 칼럼을 읽는 5분 동안에도 60명의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뜻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요청한 매년 440억 달러의 빈곤국 지원자금도 외면당하고, 기아 완전퇴출의 구체적 목표시한도 반영되지 않은 채 이번 회의는 형식적인 선언문 채택만으로 폐막됐다.
120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는 지구에서 10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는 기아문제는 국제정치와 경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안이다. 보통사람들에겐 원인의 이해조차 쉽지 않고 대책은 더더욱 능력 밖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숫자가 아닌 배고픈 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려 한다면 보통사람들에게도 할 일은 있다.
작년 이맘때 쯤 한 웹사이트에 유대교 랍비 마크 겔먼의 짤막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작은 선행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면서 그는 나비와 불가사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지난 해 11월의 ‘기적’은 차가운 아침 뉴욕주 산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제넷이 날개가 부러진채 죽어가던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냥 지나치는 대신 나비를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 제넷은 네티즌들의 도움을 받아 부러진 나비의 날개를 치료해주었고 한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완쾌한 나비를 따뜻한 남부로 가는 트럭에 태울 수 있었다. 며칠 후 “나비는 플로리다에서 자유롭게 날아갔어요”라는 트럭운전사의 전화 한통으로 ‘기적’은 완성되었다.
-폭풍이 지나간 바닷가에서 한 노인이 불가사리를 바다 속으로 던지고 있었다.
조깅을 하던 젊은이가 무얼하느냐고 물었다. 노인이 파도에 밀려 나온 불가사리들이 햇볕에 말라죽기전 물속으로 던져주는 것이라고 하자 젊은이는 비웃듯 말했다. “불가사리가 저렇게 많이 널려있는데 해는 벌써 중천입니다, 소용없는 일이예요” 노인은 또 한 마리 불가사리를 바다속에 던져주며 대답했다. “저놈한테는 소용있는 일이거든”
작은 선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무료급식소에서 봉사를 할 수도 있고 사랑의 쌀 나누기에 성금을 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10억을 위한 10억(A Billion for a Billion)’에 동참할 수도 있다. 세계식량프로그램이 지난 주말부터 시작한 범세계적 기아돕기 캠페인이다. www.wfp.org/1billion에 들어가 화면 속 빨간 컵을 다시 클릭하면 된다. 10억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1주에 1달러씩만 기부한다면 10억명 굶주린 사람들의 삶을 바꿔줄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날개 다친 나비는 너무나 많다. 구해주어야 할 불가사리도 얼마든지 있다. “당신이 간호해주어야 할 한 나비를 발견하기를, 당신이 구해주어야 할 한 불가사리를 발견하기를, 당신이 먹여야 할 한 사람을 발견하기를, 그래서 기적의 한 해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이라는 랍비 겔만의 기도를 기억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못 가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날, 땡스기빙이 꼭 1주일 남았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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