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츄래픽 때문에 길이 막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에스터는 자기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름도 괴상하지 굉필이라는 아이가 시간 늦겠다고 안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지금 아무 화도 나지않고 평온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래듸오 버턴을 쿡 눌렀다.
옛날 한국에서 노래가 듣고 싶어 래듸오를 틀면 오늘의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는 자주 듣던 소리가 새삼 그리웠다. 뉴스가 무엇이냐. 새로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오늘 듣는 새로운 소식은 정말 나쁜거다. 며칠전부터 오늘 중요한 일이 있는데 차 좀 태워달라고 예약하길래 그래라고 했더니 지금에사 그런 말을 한다. 여자 친구 부모님과 한국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일종의 선보는 자리라나.
얘기 지금 누구 엿먹이나. 그러나 곧 깨달았다. 자기가 상대방에게 좋아한다는 어떤 귀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같이 미련한 놈. 정말 이애는 소같이 미련한 놈이다. 사람속을 그렇게 모르고 내가 너한테 바친 정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어?
“어떡하지. 처음부터 시간 안지키면 큰일인데. 어? 이제 슬슬 빠진다. 됐다.”
굉필이는 차가 하이웨이로 빠지면서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밝은 표정이 되었다. 래듸오 노래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때 부르던 New Day였고 에스터 차는 다른 차량 행렬속에 끼여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하고 굉필이가 차창을 내리고 한쪽 손을 귀에 귀에 갖다대었다. 뭐라구?! 옆에 차는 오십대로 보이는 동양인 부부같은데 뭐라고 말하는지 하이웨이 길에서 전연 들리지 않았다.
“얘 빨리 창문 올려. 저쪽 운전수 잘못하면 사고나겠다.” 에스터가 말하면서 힐긋 그 차를 보니 운전석의 남자가 갑자기 종주먹을 들어올리며 화가나서 씩씩거렸다. “얘 저사람 왜 저러니? 왜 화가나서 저래?”
“내가 혀를 내밀고 이렇게 에, 에, 에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거든.” “어마 얘봐라? 너 어른한테 무슨 그런짓을?” “중국 사람이잖아?”, “얘봐라. 중국 사람이라고 왜 너한테 그런 놀림을 당해야 돼? 너 머리가 잘 돌아 가지 않으면 살기 고달픈 법이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안돌아가니? 그 말뜻을 모르니까 머리가 안돌아기지.”
바보 같은 놈. 이제와서 내 입으로 말하고 스스로 채였다는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널 좋아했는데 하고 말하면 어, 그랬어? 하는 쑥스러운 그 한미디 뿐이겠지.
오늘 그 사람들 점심은 소 한마리야 하고 굉필이가 미리 정해놓은 듯 그렇게 말했다. “뭐라구? 소 한마리라니 식당에서 소를 잡아줘?” “메뉴에 그런게 있어. 통째로 한마리가 아니고 송아지 부위별로 한점씩 썰어 골고루 나오나봐. 그러니까 그걸 먹으면 소 한마리 먹은거와 똑같애.”
굉필이 말을 들으면서 에스터는 갑자기 배가 아파 터질 것 같았다. 심사가 틀리니까 사람이 소 한마리를 통째로 먹는다는 사실에 금방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냐? 그래, 나는 나야. 이 우주에 딱 하나밖에 없는 귀하고 값비산 존재야. 미련하고 눈치없는 아이 때문에 속상해 할 이유가 어딨어? 나야말로 조금전의 뉴데이 노래처럼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거야.
그렇게 아쉽고 허전한 마음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를 식당 파킹랏에 세웠다. 밖을 나온 굉필이가 먼저 아, 하고 괴성을 질렀다. 에스터 차바퀴의 한쪽 헙캡이 하나 빠져 나가고 애꾸눈같이 한쪽 바퀴만 반짝거리는 헙캡이 붙어 있었다.
“어서 들어가 늦었잖아.” 에스터는 굉필이를 들여보내고 한참 있다가 식당으로 들어가서 그가 앉은 뒷자리에 자리 잡았다. 에스터는 속으로 흠짓 놀랐다. 어머머! 굉필이 앞자리에 마주앉은 사람은 조금전에 차속에서 종주먹을 쥐고 흔들던 그 남자분이 아닌가. 남자옆에 나란히 앉은 부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굉필이를 엄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젊은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영문을 모르면 그냥 갈것이지 어른한테 버릇없이 그게 무슨짓이야? 혓바닥을 소같이 그렇게 내밀고 에.에.에라니? 그 둥그런 쇳덩이를 피하려다가 까딱 잘못했으면 이중사고가 날뻔했는데 울랄라하고 그냥 갈 사람이 어딨어? 않되겠네.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가지를 안다고 다음부터 우리 딸애 만나지 말어.”
예쁘게 생긴 여 종업원이 에스터 앞으로 다가와서 뭘 드실거냐고 물었다. 그래, 지금 저 여자 친구도 나하고도 전연 인연이 못되는 그냥 스쳐가는 어떤애가 알려준 음식이지만 이때 안먹어 보고 언제 먹어보냐. 황금소띠 해가 지나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창창히 남아있다.
에스터는 입을 작게 벌리고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말했다. “소한마리 주세요.”
내가 지금 뭐라고 했나? 아, 소한마리. 가까이서 들리는 소의 비명처럼 뉴데이의 후렴곡이 자꾸 떠오르면서 눈물이 솟구쳐 나오려고 했다. 내가 정말 이 애를 좋아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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