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각 지역에서 조용히 치러졌을 홀수 해의 중간선거가 금년엔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마디로 오바마 때문이다. ‘역사적 대통령의 1년’에 대한 유권자의 첫 직접평가를 궁금해하는 전국적 호기심이다. 특히 버지니아 및 뉴저지의 주지사 선거와 뉴욕북부 연방하원 보궐선거 결과에 캘리포니아 주민들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역 주민이 아닌 아웃사이더의 시각으로 볼 때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 첫째, 오바마의 코트자락은 얼마나 길까. 둘째, 불붙은 공화당의 내전은 어디까지 치달을까.
대통령 본인은 선거당일인 3일 밤 시카고 불스 경기를 볼 것이라고 백악관이 짐짓 무관심을 강조할 만큼 민주당의 판세는 시작 전부터 어두웠지만 그중에서도 오바마에게 가장 아픈 패배는 뉴저지 존 코자인 현직주지사의 낙선이었다. 민주당 후보 코자인의 승리는 오바마의 영향력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뉴저지는 민주당의 표밭이었고 오바마는 그 바쁜 와중에 5번이나 직접 지원유세에 나서고 선거참모를 파견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코자인도 코자인 캠페인인지, 오바마 캠페인인지 헷갈릴 만큼 오바마를 내세웠다. 그런데 별로 뛰어날 것도 없는 공화후보에게 패배했다. 물론 오바마 때문에 패한 게 아니라 오바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패한 것이다. 로컬에서 지지도가 바닥인 현직을 승리로 이끄는데는 오바마의 영향력도 별 도움이 못된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가 ‘오바마와 무관하다’는 백악관의 강변이 과히 틀리건 아니다. 사실 이 지역에서 오바마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이곳을 오바마의 확실한 표밭으로 만들어주었던 지지 세력이 이번엔 냉담했다. 오바마에 열광했던 젊은 층과 흑인 유권자 상당수는 아예 기권했고, 체감하기 힘든 경기회복에 실망하고 악화되는 실업률에 불안한 무소속이 등을 돌렸다.
코자인의 패배는 내년 재선을 앞 둔 민주당 의원들에게 등골 서늘한 산 증거가 될 것이다. 오바마의 코트자락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기대기엔 너무 짧다는 것을 목격한 셈이니까. 특히 보수적인 접전지역 출신 의원들이 진보적 당론에 반대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오바마와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빈사상태에서 되살아난 공화당은 자축 분위기로 한껏 들떠있다. 그러나 공화당 역시 마냥 희희낙락할 처지는 못 된다. 내분을 넘어 내전으로 번질 집안싸움이 공화당의 본선승리를 막을 지 모른다는 우려가 눈앞에서 현실화된 것이다.
3일의 선거결과를 ‘공화당 압승, 민주당 완패’로 규정짓기 힘든 것은 뉴욕 북부 23지구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의 민주당 후보 승리 때문이다. 민주당에겐 공화당의 집안싸움 덕에 어부지리로 얻은 뜻밖의 보너스다.
이번에 가장 드라마틱했던 선거전은 바로 이곳에서 펼쳐졌다. 지난 120여년 동안 줄곧 공화당이 장악해온 선거구다. 초당적 인선을 강조한 오바마 행정부의 육군성 장관으로 발탁된 존 맥휴의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특별선거였다. 무난할 줄 알았던 선거전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막후회의를 거쳐 디디 스코자파바를 후보로 지명하자, 동성애와 낙태를 지지하는 중도우파 스코자파바 지명에 반발한 보수파 덕 호프먼이 제3당인 보수당 후보로 출마했고, 새라 페일린과 글렌 벡 등 목소리 요란한 극우보수진영의 얼굴들이 공개적으로 호프먼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며 1백만달러가 넘는 지원금을 쏟아 부었다. 지지도가 폭락한 스코자파바는 급기야 선거를 사흘 앞두고 도중하차를 선언했다.
그러나 혼자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빌 오웬스 민주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아예 지원유세까지 나섰다. 대 민주당 싸움이 아니라 공화당내 지도부와 극우강경보수의 대결이었던 이번 선거전은 결국 공화당 전체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금년엔 50개 중 겨우 2개주의 주지사를 뽑았을 뿐이다. 내년엔 캘리포니아를 비롯, 39개주 주지사와 38명의 연방상원의원, 435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대규모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모처럼 승리한 공화당의 소망대로 금년선거가 내년선거의 예고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변하는 정치 환경의 흐름을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다.
내년의 승패는 유권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누가 더 정확하게 읽고 올바르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내가 민주당이라면 등 돌린 무소속을 되찾기 위해 “문제는 경제야!”라던 클린턴의 모토를 캠페인의 주제로 삼을 것이다. 공화당이라면 “민심은 중도에 있다”라는 매 선거 때 마다 되풀이되는 결론을 기억하며 극우 이념투쟁을 멀리할 것이다. 지난 30년 빠짐없이 투표해온 충실한 무소속 유권자의 의견이니 과히 틀리진 않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