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을 준비한 행복한 고생 끝에 성공적인 전시회였다고 자평하며 미뤄왔던 출사여행을 떠난다. 토요일까지도 일하는 회원들이 있는 터라 토요일 밤 12시를 출발시간으로 정하고는 혹시 좀 무리가 아닐까 걱정하며 약속된 출발 장소에 도착하니 거의 모든 회원들이 미리 나와 한번 본적도 없는 대절한 버스에 벌써 올라앉아 자리들을 잡고 빨리 타라고 오히려 안내를 한다. 저 회원은 어제까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고, 이 분은 초저녁 잠이 많아 평소 10시를 못 넘긴다고 했는데… 어찌 이리 초롱초롱한 눈빛들로 이 야심한 시각에 소풍 떠나는 초등학교 3학년쯤의 표정들을 짓고 있을까? 같이 떠나기로 했던 자녀의 감기 기운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하는 회원 한 사람을 제외하고 99퍼센트의 출석률로 대절한 35인승 버스의 문이 닫히고 호랑이의 포효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소리를 내며 큰 몸집의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무지 잠 잘 생각들이 없다. 전시회 기간에 매일 보다시피 했는데도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한 시간쯤이 지나서야 약간 조용해지며 잠들기 시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운전기사님의 배려로 취침하기 좋도록 실내등이 모두 꺼진다. 두어 시간쯤을 지나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최대한으로 길게 뻗어 나름대로 편안한 자세를 확보하며 소음 속 단잠에 빠져든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미모의 회원이 자기 자리 밑으로 뻗어 있는 내 바지를 잡아당긴다. 잠결에 깨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잠시 생각해 보는데 또 한번을 잡아당긴다. 분명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로 들리게 할 것이지 남 모르게 은근히 바지를 잡아당길 일이 없지 않은가? 옆 사람을 의식하며 소리 없이 보낸 사인 같은데 왜냐고 소리 내어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게 한참을 더 가고 드디어 주유를 위해 정차한단다. 내려서 조용히 물어 봐야지 마음 먹고 있는데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회장님, 아까 바지 잡아 당겨서 미안해요”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럼 은밀한 신호가 아니었단 말인가?
에어컨 바람이 차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있는데 자꾸 흘러내려 당기다가 내 바지자락까지 잡아 당겼단다. 당겨보니 발까지 따라와 깜짝 놀라 잠 깨운 것 같아 미안해서 아무 말 못하고 있었고, 그 바지의 주인은 미모의 여인으로부터 받은 은밀한 사인의 의미 해석에 머리 속이 잠시 복잡해지는 어둠 속의 해프닝으로 “나는 나한테 보내는 무슨 은밀한 메시지인줄 알았어요” 한마디에 차 안은 다시 한번 웃음소리로 새벽 찬 공기를 데운다.
동틀 무렵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하니 손이 시려 카메라 조작이 쉽지 않다. 하지만 모두들 빠른 동작으로 좋은 위치 확보에 바쁘고. 한 팀은 아침식사를 위하여 준비에 분주하다.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 약간의 낮은 기온인데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오랜만에 신선한 냉장고에서 갓 꺼낸듯한 온도의 공기를 가슴속 깊은 곳까지 배가 부르도록 채워 넣으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비록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새벽잠을 설치고 달려온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는 그 자체가 주는 행복감이란 좋은 작품을 얻었을 때의 행복감 그 이상일 것이다. 여러 가지 저마다의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은 이미 다른 나라의 이야기 일뿐 지금은 오직 사각의 뷰화인더 안의 나만의 세상 행복에 빠져 있다. 귀가 멍할 정도의 적막한 공기의 소리만 떠도는 들판에서 들리는 셔터 음은 아마 사진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어느새 수줍은 듯 조금씩 보여주던 이른 아침 빛은 눈부신 햇살로 바뀌며 여성회원들의 화장기가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은 얼굴들을 비춘다. 어제 출발할 때 그 미모들이 아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대단한 변신이다. 어떤 화장품 광고에선가 본 적 있는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였다. 이렇게 변신하는 것도 무죄인지 약간 궁금하긴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 지워진 화장기들을 대신하고 있어 그래도 아름답다. 어차피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 않은가? 하루 종일 즐거운 웃음소리와 셔터음으로 조용한 산속의 평화를 깨트려놓고 어두워져서야 차에 몸을 싣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사진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바지자락을 잘 단속하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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