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주에서 유리공장을 경영하는 월터 로웬은 지난 8월 종업원 의료보험을 갱신하려다 깜짝 놀랐다.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무려 160%나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24명의 종업원을 둔 스몰비즈니스 업주인 로웬으로선 도저히 부담하기 힘든 인상폭이었다. 보험회사의 이유는 간단했다 : “당신네 종업원들이 너무 늙어가니 의료비가 매우 비싸질 것이다”
결국 로웬은 혜택이 낮은 보험으로 바꾸었다. 그래도 보험료는 44%나 더 내야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퍼블릭 옵션’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로웬은 싼 보험료를 내고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부 운영 보험에 가입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 스몰비즈니스에 대한 보험료 대폭 인상이 의회가 퍼블릭 옵션이 포함된 헬스케어개혁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하는 산 증거”라고 퍼블릭 옵션의 수호천사 같은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도 강조한다.
지난여름 극우보수들의 아우성 타운홀에서 거의 사망선고를 받았다가 가을바람을 맞으며 기적같이 소생한 ‘퍼블릭 옵션’이 요즘 연방의회를 부글부글 끓게 하고 있다. 두주전 상원 재정위 개혁안에서 제외되면서 또 희생 되는가 했더니 26일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상원안에 퍼블릭 옵션을 포함시키겠다는, 평소 신중한 그답지 않은 과감한 선언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2009년은 이제 63일밖에 안남았다. 베테란스데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의회가 문을 닫을 연휴를 제외하면 50일도 채 안된다. ‘금년내 통과’라고 백악관은 거듭거듭 못을 박지만 방대한 법안을 마무리 짓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다. 그 와중에서 퍼블릭 옵션이 뜨거운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면서 찬반각론이 시끌시끌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퍼블릭 옵션이 뭐길래…
쉽게 말해 퍼블릭 옵션은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이다. 운영방식은 민간보험회사와 다르지 않다. 메디케어처럼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으로 운영된다. 공무원을 포함한 직장보험 가입자들, 군인, 메디케이드를 받고있는 빈곤층, 메디케어를 받는 노인층 등 대다수 미국민에겐 가입자격도 주어지지 않은, 당장은 아무 상관이 없는 제도다.
헬스케어개혁안의 기본전제 사항 중 하나는 전국민의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다.
원하든 안하든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민간보험은 너무 비싸 도저히 가입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퍼블릭 옵션은 그들을 위한 하나의 옵션, 선택이다. 비싼 가격에 보험을 사야했던 개인들과 스몰비즈니스의 직장보험, 돈이 없어 보험에 들지 못했던 사람들이 첫 대상이 될 것이다.
자영업자가 많고 스몰비즈니스가 대부분이어서 특히 무보험자 비율이 높은 한인의 경우 커뮤니티 차원에서 지지해도 좋을 사항이 퍼블릭 옵션이다.
퍼블릭 옵션의 최대 장점은 싼 보험료일 것이다. 같은 커버리지에 싼 보험료라는 조건엔 몇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정부가 비영리이기 때문이다. 운영경비만 나오면 될 뿐 민간보험사처럼 이윤을 최고로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또 정부보험의 경우 행정 경비가 3~11%로 25~35%에 달하는 민간보험사에 비해 훨씬 덜 들어간다. 의사나 병원 등에 지불되는 의료비도 정부가 발언권 센 협상력을 발휘하여 낮출 수 있다.
앞으로 보험시장에서 이같은 퍼블릭 옵션과 경쟁해야한다면 민간보험은 비즈니스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적절한 이윤, 효율적 경영 등으로 보험료를 낮추고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보험료 폭등을 제어하니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헬스케어비용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행초기엔 가입대상이 제한되지만 만약 인기가 높아지면 퍼블릭 옵션이 전국민에게 오픈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니, 오픈되는 것이 당연하다. ‘민간보험 다 망한다’며 결사반대 로비에 나설 게 아니라 지금까지 누려온 독과점의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커버리지 같은 보험을 싼 가격에 제공하는데 어느 소비자가 싫어하겠는가. 문턱 높고 비싼 사립학교만 있는 곳에 값싼 공립학교도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셈인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퍼블릭 옵션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처음부터 확실했다. 그러나 전국적 여론과 각 지역구 대표가 모인 의회의 정치는 또 다른 이야기다. 당장 퍼블릭 옵션이 넘어야할 거대한 장벽은 상원의 60표다. 민주당 58표와 무소속 2표가 단합해야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고 최종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는데 벌써 무소속 조 리버먼이 반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퍼블릭 옵션을 선호한다면서도 살리기 투쟁은 외면해왔던 오바마 대통령이 의원들 설득에 발 벗고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퍼블릭 옵션이 포함된 헬스케어개혁안이 입법화될 수 있다면 힘들고 지친 수천만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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