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넘치는 작가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 : “술은 마시기 위한 것, 물은 싸우기 위한 것”
흐르는 강물은 평화롭지만 그 강물을 공유한 인접국들의 물을 차지하려는 분쟁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 요르단강의 수원지 확보 분쟁이 67년 중동전쟁의 도화선이었고, 터키에서 발원하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물은 시리아와 이라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생명수이며 중국이 티벳 독립을 허용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티벳의 풍부한 수자원 때문이다.
물 부족 현상은 심각하다. 이미 11억명이 겪고 있는 깨끗한 물의 부족은 2030년엔 세계인구의 절반이 경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도 오래다. ‘물은 보장된 인권인가, 거래될 상품인가’ ‘인류재앙의 새 불씨는 지역 및 계층 간 물 전쟁이다’에서 ‘새로운 석유, 파란 황금’을 둘러 싼 ‘워터 뱅크럽시’ ‘워터 쇼크’…듣는 것만으로 어지러운 갖가지 표현들이 진지한 국제회의에서 난무하기도 한다.
국가 간의 분쟁만은 아니다. 물을 둘러싼 갈등은 요즘 캘리포니아에서도 한창이다. 3년째 이어지는 극심한 가뭄, 노후된 급수 기간시설, 급수체제의 관리소홀, 환경오염, 그리고 인구증가 - 이 모든 것이 합해져 주 사상 최악의 물 부족 사태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 정기회기가 끝났는데도 귀향을 못하고 캘리포니아 주의원들이 다시 붙잡힌 것은 물 위기를 해결할 대책마련을 위해서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물 법안을 타결해야한다며 특별회기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물’은 캘리포니아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수원지의 대부분은 강수량과 적설량이 많은 북가주에 있는데 절대다수의 인구는 사막지대인 남가주에 몰려있다. 물의 배급과 관리가 중요한 정치이슈라는 뜻이다. 남가주가 ‘우리 물을 훔쳐간다’는 북가주의 피해의식은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는 과학자나 정치인들의 설득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수원지의 하나인 콜로라도의 강물도 계속 줄고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중심 수원인 새크라멘토강과 샌호아킨강이 만나 삼각주를 이루는 델타지역이다. 시에라의 눈녹은 물이 이곳을 거쳐 수로를 통해 농업지대와 남가주로 보내지는데 가뭄에 더해 서식하던 물고기가 멸종되는 등 생태계 파괴가 심해지자 연방법원이 이지역의 양수제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어류멸종으로 어업이 망하고, 제방은 지진 한번이면 붕괴할 위험에 처해있고, 급수 중단으로 버려둔 농토가 황폐하면서 농부들의 파산이 속출하고, 이 와중에 행여 내 몫의 물 권리가 침해당할까, 각 이해당사자들의 불안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수십년 주의회와 주지사들이 끊임없이 ‘물 정치’에 매달려왔지만 물 위기는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숙제다. 금년에도 주의원들이 연초부터 열심히 다루어왔으나 회기가 끝난 9월까지 마무리를 못한 것이다.
중요하긴 하지만 새롭지도 않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물 법안이 관심을 끈 것은 역시 터미네이터 주지사다운 행보덕분이었다. 상하원을 통과한 후 주지사 서명을 기다리는 700여개의 법안이 책상에 수북이 쌓인 지난 9일 슈워제네거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 일요일(11일)까지 물 법안에 합의를 못 이루면 700여개 법안에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 그건 주의회 지난 한해 회기 전체를 헛수고로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다행히(?) 일요일 자정이 가까워 오자 한발 물러나 “협상에 진전이 보인다”면서 법안 서명을 끝낸 주지사는 대신, 지난주부터 시작된 특별회기를 소집한 것이다.
작년 겨울엔 연말휴가도 미룬 채 균형예산안 타결을 위해 주지사가 소집한 밤샘 특별회기에 볼모로 잡혔던 ‘불쌍한’ 의원들이 벌써 두 주째 잇단 비공개 회의를 통해 씨름하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포괄적인 물 정책 개혁안이다.
법안의 목표는 크게 두 갈래다. 급수를 보장하는 동시에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목표엔 양당간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시행방법에 들어가면 각 이해당사자들을 대변하는 물 정치가 시작된다. 공화당은 새로운 댐건설을 원하고 민주당은 생태계보호와 낡은 기간시설 개선을 우선으로 한다. 주지사는 법안 시행 경비로 120억달러 공채발행을 강력 추진하지만 민주당 뿐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이 재정적자의 시기에 또 빚을 지느냐며 난색을 표한다.
새 저수지 건설과 낙후된 기간시설 대대적 보수, 생태계 복원과 20% 강제 절수령, 거액의 공채발행과 수도요금 대폭인상, 이 새로운 정책을 독립적·효율적으로 관리 통제할 감독기관 창설 등…캘리포니아주 물 정책이 전면 개정될 법안통과를 눈앞에 둔 ‘역사적 순간’이라고 새크라멘토는 흥분하고 있다.
흥분은커녕 물 위기조차 모르겠다는 보통주민들도 법이 시행되면 실감하게 될 것이다. 자칫 수도요금은 천정부지로 뛰었는데, 마당의 잔디는 말라 죽고 시간제 급수에 샤워도 제대로 하기 힘들지 모르는 불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내년 6월이나 11월 주민투표에 회부될 물 법안의 추이를 우리도 주의깊게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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