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몇 년 했지만 그 여자가 알고 있는 영어는 사실 귀로 줏어들은 콩그리쉬 몇마디 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별 어려움 모르고 살고 있는 미국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미국와서 처음에는 백 불이라고 말하면 꼭 손가락 한 개를 바로 세우고 자기 눈옆에 갖다 붙혔다. 눈알이 동그라미 두개니까 손가락 하나 갖다붙이고 100이 맞느냐고. 그런데 아직까지 치킨윙 달라고 말하면서 양팔을 닭날개처럼 겨드랑이에 집어넣는 자신을 보고 “어머, 너 왜그러니?” 그 정도 살았으면 다른 사람처럼 않되는 영어로 잘도 지껄여야지. 여자는 자기가 생각해도 영특하지 못하고 둔한 편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않되는걸 어떡해!
여자는 꿈길 같은 남편따라 처음에는 괌도에서 살다가 술만 먹었다 하면 개지랄하는 남편과 어느날 빠이빠이! 하고 살기 좋다는 본토 베이에리아에 들어와서 그동안 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누구하고 자꾸 말도 많이하고 싶어진다. 이상하지? 이제야 말로 사람들이 전화통을 붙들었다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너 혼자만 알아라고 끊임없이 속삭거리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성적으로 수다를 떨지못하고 친구도 없다보니 새삼스레 외국인만 득실거리는 아파트에서 그것도 영어가 유창해서 오 마이 갓! 어쩌고 맞장구칠 능력도 없다보니 여자는 솔직히 조금 외롭고 더럽게 자꾸 슬픈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불편한 자기 심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저께는 4층에 사는 밥맛없는 한국 여편네가 느닷없이 “아줌마 자기는 영어 못하지?” 하고 불쑥 말했다. 이 여자가 무슨 수작으로? “우리 큰 딸년 말이 엄마는 영어 못하지? 영어 못하지? 그러니까 엄마는 죽어, 죽어. 그런 소릴 하잖아?” 3살과 8살짜리 두 딸아이를 데리고 이사온지 얼마 않되는 그 여편네는 딸년 때문에 분해 죽겠다는 말대신 오히려 일종의 자랑스러움이 얼굴 가득히 배어있었다. 그만큼 영어를 잘한다는 뜻일까? 기도 안차서. 어쨌던 그 여편네를 몇번 상대해보니 도저히 가까히 하기에는 너무도 먼 품종이었다.
사람은 누구나없이 자기 천적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예수쟁이 전도사처럼 붙잡고 끊임없이 사근사근 속삭여도 야박하게 탓할 수 없어 내버려 두었더니 나중에는 전연 모르는 다른 사람 얘기까지 다 한다. 그리고는 엉뚱한 말을 밑도 끝도 없이 쏟아붙고는 “속된말로 먹고 떨어져라 이거지.”하고 자기가 끝마무리를 해버린다. 속된말로라니?! 아니, 그보다 더 고급한 말이 있어면 그대로 해야지 유식한 말은 못알아 들을까봐 속된말로 하자면 하고 지멋대로 사람을?
그렇잖아도 여편네 하는 꼴이 무지랭이 같아서 그 여편네가 잘쓰는 말로 에니웨이, 상대하지 않기로 했는데 살다보니 기막힌 소리도 다 들었다. 그동안 길건너 사는 죠오지 엄마는 또 언제 알았는지 죠오지 엄마가 이런 말하면 않되는데 하면서 알려주었다. “자기 일요일날 그 여자 이사온 다음날부터 세번이나 절에 갈 때 안경 안끼고 갔다면서?”
내가 안경을 벗어놓고 갔나? 그래. 갑자기 눈 안질이 당긴다고 했더니 안과에서 당분간 신문 글자나 책은 절대로 읽지 말라고 해서 일부러 안끼고 갔는데? 그 여편네 말이 안경 없어면 죽을것같이 매일같이 꼭 안경끼고 사는 사람이 절에 갈떄 자기 눈까리 빼놓고 가는 이유가 뭐야? 예불시간에 모두 한목소리로 불경책을 읽는데 핑계도 좋지, 안경 안쓰고 와서 글씨를 못본다고 하면 되잖아? 미국에는 기억자를 몰라도 영어만 잘하면 되니까 에니웨이 그 정도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관대한척 말하드란다.
이 여편네를 어떻게 조지지? 이대로 있다가는 너무 분해 잠이 안올 것 같아서 여자는 4층으로 올라가서 마침 현관문이 열려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얘, 너 엄마 어딨어? 엄마 없어?” 그러자 갑자기 노! 하고 3살먹은 딸아이가 무조건 노라고 소리쳤다.
옆에 있던 큰 딸년이 자기가 NO 라는 말도 모를까봐 동생보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얘 아줌마한테 노라고 하면 안돼. 아니야, 해야 돼.”
뭐라고?! 두 아이들 하는 꼴이 우습지도 않아 후닥 돌아서는데 안에서 여편네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어?” “응. 에니웨이 아줌마야. 그래서 내가 아니야, 하고 말해줬어.” “잘했어. 에니웨이 잘쓰는 사람치고 영어 잘하는 사람없다. 그 아줌마는 아니야, 해야 귀에 쏙 들어가는 사람이야 잘했어.”
여자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지금 돌아서 나온 것이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남보다 잘하고 싶고 이기고 싶고 기왓집 짓고 싶은 욕심을 그냥 버리라고 하면 억지로 버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살면서 아주 작은 신통찮은 것부터 내동댕이 치면 차츰 마음이 비워져서 거기에 천당의 공간이 생긴다고 스님이 말했다. 살면 살수록 이국하늘 밑에서 자꾸 말을 하고 싶어 이것저것 다이나마이트같이 터트리고 싶은 답답한 그 기분을 안다.
그래, 이민 보따리 푸는 그때부터 아무리 살아도 나그네 같은 바람을 서로 감추고 모여사는 이곳인데 내가 저런 여자 갉봐서 이기면 뭣하나. 그렇지만 상대 않되는 사람이라고 돌아섰지만 한편으로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에니웨이?! 내가 그말을 그렇게 많이 썼나? 새대가리 같은 년. 여자는 새삼 화가나서 이를 갈았다. 내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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