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밤에 남편이 하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귀가 따뜻해진다.
남편 인상은 곱상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하고 좀 무서운 편이다. 그런데 첫날 밤에 불꺼진 캄캄한 방안에서 무섭고 부끄러움에 내가 몸을 조금 트니까 남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정이 함뿍담긴 낮은 저음으로 소근거리듯이 말했다. “알라맹키로.”
알라맹키로?! 어린애같이 왜 그러냐는 부산 토박이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더운 입김이 얼마나 나를 안심시키고 따뜻하게 하는지 나는 솔직히 내 손으로 훌훌 벗어던지고 싶었다.
남편은 나를 나무랄때나 달랠때나 똑같이 알라맹키로라는 그말 한마디만 사용했다. 그리고 ‘토까이맹키로 와그라노?’하는 말도 잘썼다. 내가 무슨일에 놀래면 토끼 눈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러냐는 말이었다.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집에 들어왔다 하면 남편말은 도저히 알아먹기 힘든 투박하고 거칠은 완전 원토백이 말이다.
어떤때는 정말 알라맹키로 내가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면 우리 밥도 먹지말고 이렇게 있자고 간지럽게 투정부리는 것만 빼고 남편은 참으로 건실하고 꾀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반듯하고 괜찮아 보이는 부부들이 갑자기 이혼하는 이유를 남들이 모르듯이 무뚝뚝한 남편과 붙어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재미없는지 도저히 그 사실을 모른다. 어쩌다 내가 보소! 하고 부르면 보소는 암소 거기가 보소다 와그라노?
오죽하면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국으로 도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썼을까. 결혼하고 반년쯤 있다가 꿈에도 그리던, 돈이 길에서 갈쿠리로 끍어놓으면 그냥 가마니에 쌓일 것 같은 미국에 왔지만 옆을 둘러보아도 하늘을 봐도 말이 통해야지. 몇 날 며칠을, 아마 두달쯤 여기서 못살겠다고 나혼자 돌아 가겠다고 얼마나 보챘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마음속으로 단단히 각오했는지 놀랍게도 한국행 KAL기 비행기표를 내앞으로 쑥 내밀었다. 우메! 전라도 남쪽 바람부는 항구에서 잘 살아야 된다 잉! 하고 마지막 배웅하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는 비행기 표를 보는 그 순간 여태까지 했던말이 새빨간 거짓말처럼 정말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세상에 그런 이상한 일이 있을 줄이야. 토까이 맹키로 와그라노? 그때 남편 입에서 처음 들어보는 그 토까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다음 날부터 어디서 힘이 나는지 죽자고 일을했다. 달러를 한푼이라도 더 벌으려고 허리가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하지않고 억척스레 일했다. 미국은 돈이 없으면 학벌이 좋든가 아니면 기술이 있어야 산다면서 남편은 세탁소로 들어갔다. 안먹고 안쓰고, 그 많은 인디언 노름장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니까 돈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던 어는날 남편이 세탁소하기에 너무 적당하고 자리좋은 빈가게를 발견하고 세탁소 경력이 많은 교회 장로님에게 자리가 어떤지 좀 봐달라면서 같이 갔단다. 장로님 첫마디가 “아, 여기는 틀렸어. 안돼” 하드란다. 남편은 워낙 신삥이라 이 방면의 도사가 안된다니까 자기도 포기했는데 너무 아쉬운 마음에 몇 달후에 도대체 무슨 가게가 들어섰나 하고 가봤더니 맙소사! 거기에 장로님이세탁소를 부러지게 턱 차려놓고 있드란다.
남편은 다음 날부터 그렇게 잘나가던 교회를 안가겠다고 자꾸 빠졌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나는 남편과 기여히 맞대결을 하기로 했다. 내가 믿음이 좋은 예수쟁이도 아니다. 나도 솔직히 사람이 죽어봐야 천당에 가는지 안가는지 아는 그런 타입이다. 교회는 모두 다 교묘하게 둘러대서 말은 비단결같이 얼마나 잘하는지 그러나 나는 아무런 확신도 없고 사람이 그리워서 갈 뿐이다.
사람이 절에 나가든 교회에 나가든 매주일 새옷을 갈아 입고 어느 한곳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일은 그 사람들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 리듬이 깨어지면 갑자기 사람이 짜증스러워지고 특히 공짜 구경도 없는 미국에서는 사는 재미가 한가지 빠져버린다. 그러니 누가 대신해 주지도 않으니까 조금 바람이 빠지고 뚫린 기분이 별 것 아닌 일마저 목소리가 까칠해지고 잡생각이 들어간다. 남자들의 잡생각이 술과 도박과 섹스외에 또 뭐가 있겠는가.
사람 사는게 그런거다. 누구는 쥐뿔나게 별난 사람이 있나? 하긴 그 사람하는 짓을 보면 분하지만 우리 시어머님 말씀처럼 분한거 다 갚을려면 이 세상 어떻게 사노? 하듯이 그건 맞는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난생 처음으로 큰 소리쳤다. “교회 장로가 되면 없던 날개가 생기고 하늘에서 뚝 떡어진 천사가 되는줄 알어? 그냥 헌금 많이내고 일 잘하라는 직함이잖아. 그건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필요한 질서야.”
내가 화난 목소리로 ‘질서’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마지막 그 말은 소근거리듯이 아주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알라맹키로!”
그러자 내 말을 듣고 들키지 않으려고 후닥 돌아서는 남편 얼굴이 거울 속에서 빙그레 웃는 것이 비쳐보였다. 웃는걸 보니까 됐다. 나는 놀란 얼굴로 웃음을 참고 뒤돌아 보는 남편 눈을 보고 한마디 더 했다.
“토까이 눈 맹키로 와 그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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