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시절. 아버님이 애지중지하시던 페트리(PETRI) 카메라는 항상 장롱 깊은 구석에서 장롱 지키는 지킴이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때, 카메라를 멘 사람들만 보면 어찌 그리 멋있게 보이던지…
장래희망으로 사진기자를 꿈꾸어 보기도 했던 시절. 기회만 되면 장롱을 뒤져 아버지 몰래 카메라를 빼내어 동네 형들에게 가져가 대낮에는 125에 8을 놓고 무조건 셔터를 누르라는 친절한 가르침에 125에 8이 무슨 의미도 모른 채 셔터를 눌러대고…
특별활동을 한답시고 사진반을 쫓아다니며 올림푸스 펜 카메라를 메고 24장의 필름을 집어넣으면 48장으로 둔갑되는 신기한 경험과 카메라가 작아 가방 속에 항상 가지고 다니며 칼티에 브레송을 흉내내 보기도 했다. 칼티에 브레송을 알기 전 어느 날인가 선배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지는 못하지만 옆에서 듣자 하니 ‘결정적인 순간’이란 책을 누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는 ‘결정적인 순간?’ 귀동냥으로 듣는 결정적인 순간은 당시 친구들 모두 최고로 소장하고 싶은 책 제1순위 플레이보이 잡지 책보다 한 수 위의 책일 것만 같은 기대감과 호기심이 발동하여 수소문 하여 백방으로 노력해 정보를 수집해 본다.
친구 한 녀석이 드디어 누군지 알아내었는데 어떤 친구의 대학생 형이 가지고 있단다. 어렵사리 접근하여 대망의 ‘결정적인 순간’을 볼 수 있는 가슴 벅찬 기회가 찾아와 몇 명의 친구 놈들과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몇 장을 넘기니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기대하고 상상했던 ‘결정적인 순간’과는 거리가 먼, 옷 입은 사람들(?)이 있는 흑백 사진들만 보여진다.
몇 장을 넘겨도 흐트러진 옷매무새의 금발의 미녀들은 보이지를 않는다. 대여섯 장을 넘기자 친구 놈들의 꿀밤 세례와 비난의 소리들이 날아든다. 친구들에게 허위 과대광고를 한 죄로 구박과 꿀밤 세례는 한 동안을 이어지는 말 그대로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결정적 순간’을 만난다. 그 후 알게 된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품과 활동, 그의 어록들은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선생님 같은 의미로 남아 있으며 칼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란 말만 들으면 혼자 웃음이 나오는 오래 전 추억이 있다.
앙리 칼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g·1908~2004)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가, 기록사진을 예술사진으로 승화시킨 사진가, 포즈를 취하지 않는 비연출 사진의 대가, 세계적 사진클럽 매그넘을 창립하고 “사진은 내 눈의 연장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금세기 최고의 거장…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은 아마 이 지면을 통해서도 모자랄 것이다. 그는 트리밍조차 거부했고 촬영하는 순간의 현실을 조작해서는 안 되며 사진 찍히는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라이카 카메라에는 항상 50mm 기본 렌즈만이 끼워져 있었으며 이외의 광각렌즈나 망원렌즈를 사용한 사진은 왜곡과 과장으로 규정한다.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지금까지 캔디드 사진 미학의 용어로 불릴 만큼 캔디드 사진의 교과서라 불러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결정적 순간’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정직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50mm 기본 렌즈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채 무조건 큰 카메라에 대포의 포신 닮은 긴 렌즈를 끼우고 플래시에는 마치 우주선처럼 생긴 기묘한 모양의 디퓨저 정도는 달아야 하고… 주변 배경이나 노출 정도는 포토샵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16GB 메모리카드를 이용하여 마음껏 눌러댄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 모두 이제는 포토샵의 수정을 이야기하며 찍고 찍힌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는 컴퓨터를 거치지 않고서는 사진으로 완성될 수 없는 태생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칼티에 브레송의 왜곡과 과장의 가르침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구세대의 진부한 생각만이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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