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재구성
정경한의원 원장 피살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대낮에 한인타운의 업소에 침입한 대담성에다 그것도 중년의 여성을 묶어 목을 난자한 흉악성에 한인들은 치를 떨었다. 이번 사건도 여느 한인 피살사건처럼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70일만에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CC TV와 한인들의 제보였다. 경찰과 고 이정애 원장 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범행부터 용의자 체포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본다.
이정애 원장 살해사건의 범인들은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건이 발생한 7월24일 오전부터 정경한의원 인근에서 범행에 적당한 시간을 노렸다.
무려 7시간을 배회하던 범인들은 점심시간 무렵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이정애 원장이 예촌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건너편 빌딩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범인들은 차를 타고 바로 길을 건넜다. 그리고 범인 중 1명이 한의원 안으로 달려가 바로 내부를 뒤졌다. 1층의 주차장을 개조한 부엌 내에 있던 금고는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 원장이 한의원 안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빈집으로 알고 들어갔다 낭패를 겪은 범인은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이 원장의 목에 칼을 겨누고 팔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금고의 번호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 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얼굴을 아는 이 원장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다음 범인은 CC TV의 선을 절단하고 녹화화면을 담은 레코드를 절취했다. 이어 다시 금고를 열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핏자국은 금고 앞까지 찍혀 있었다.
결국 금고를 여는데 실패한 범인은 대기하고 있던 공범들과 도주했다. 이 원장의 시신은 오후 4시경 한의원을 찾은 한인 할머니에 의해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사건 초기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정경한의원을 찾은 최근 고객들의 신상파악에 나선 것은 물론 라티노 고객들까지도 수사대상에 넣었다. 숨진 이 씨의 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등 사건의 단서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이 원장과 가족들의 지인들도 만나 광범위한 탐문수사를 펼쳤다. 경찰은 금품 강도에 의한 범행에 무게를 두는 한편 원한, 치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해왔다.
그러나 수사는 용의자 확보에 결정적 단서가 될 보안용 감시 카메라(CC-TV) 녹화 화면이 사라짐에 따라 난관에 부닥쳤다.
이 고비를 해결해준 것도 역시 CC TV였다. 사건 현장의 인근 예촌에 설치된 외부 감시 카메라에 범인들이 탄 차량이 잡힌 것이다. 경찰은 용의 차량을 공개했다. 2003년에서 2008년도 식으로 추정되는 인피니티(Infiniti) FX 35 또는 FX 45였다. 컬러는 검정색 또는 암청색으로 추정됐다.
용의자의 윤곽도 잡혔다. 한의원으로 들어간 용의자는 옅은 그린 셔츠에 엷은 황갈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검정색으로 전체적인 체형이 한인 남성으로 분석됐다.
경찰은 DMV에 차량을 조회하는 등 관련 차량 소유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며 용의자에 서서히 접근해 들어갔다.
한인들의 제보도 이어졌다. 수사팀은 용의자의 신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CC TV에 잡힌 차량 색깔 분석 때문에 수사에 큰 혼선이 빚어졌다. 화면에서는 흑색 또는 암청색으로 보였으나 경찰이 파악한 용의자 차량은 자두색에 가까운 멀룬 컬러였다. 이 때문에 용의자 검거에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한편으로 수사팀은 용의자들의 소재지 경찰과 협조하면서 용의자를 계속 감시하고 도주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마침내 보강수사를 마친 훼어팩스 경찰의 수사팀은 오하이오 주 경찰에 용의자 체포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5일 더블린의 직장에 있던 용의자 대니 김씨가 전격 체포됐다. 사건 발생 근 70일 만이었다.
용의자 검거의 일등공신은 CC TV와 한인사회의 제보였다. 경찰은 감시카메라 화면을 통해 범인들의 차량을 확인했으며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인들의 제보도 유용했다. 이건 강력반장은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죽은 이정애씨가 커뮤니티의 노인 등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과 자선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특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빼놓을 수 없는 건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었다. 북버지니아 한인회는 훼어팩스 카운티를 방문, 조속한 범인 검거를 촉구했으며 워싱턴한인연합회는 코러스 축제 때 범인 검거를 위한 현상금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힘이 커진 한인사회의 큰 관심은 수사팀과 당국의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특히 그동안 한인 등 소수계가 피해자인 강력사건에 경찰 수사가 미온적이라는 한인사회의 반응도 부담이었다.
수사발표 기자회견장에서 데이빗 로러 경찰국장은 “한인범죄는 경찰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우리 경찰은 모든 범죄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특히 이번 사건 해결에 한인사회가 보내준 협조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으로 공범의 구속을 위한 증거확보에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공범은 최소한 1명 이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이번에도 한인사회의 제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화 (703) 246-7920.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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