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아내는 체념한 듯이 안방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이틀 후면 이집을 비워주고 나가게 된다. 정든 집이었다. 남자는 못다한 아내의 소원을 이루어 주려고 집고칠 연장을 들고 들어왔다. 피땀흘려 장만한 주택인데 은행차압에 넘어갈때는 그 심정이 편치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는 집 뺏기는 것도 억울하지만 현관 앞에 삐거득거리는 바닥을 고치려고 입이 열댓발이나 나와 가지고 카펫속에 박힌 못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아내의 소원이지 남자는 나가는 년 방아 찧어주고 나가는 것 봤어? 지금 우리가 그럴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했지만 어차피 나가는 집 내가 처음부터 고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소원인데 그러고 나면 미련없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아내만큼 소원이라는 말을 잘쓸까. 무엇이든지 어마, 이건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소원인데 잘됐다 여보, 그러면서 좋아했다. 남자는 소원이라는 아내의 말에 완전히 중독되어 그 말을 듣고싶어 그동안 좋은 것도 많이 사다주었다.
아내한테 무엇을 잘사주는 남자는 원래 혼자 몰래 호박씨 잘까는 남자다. 남자는 도둑놈처럼 은밀한 비밀을 많이 감춘 자기 잘못을 보상하는 마음으로 당신 좋을대로 해, 하고 평소 관대한 척 그렇게 해주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아내 말을 듣지않고 결국 자기 때문에 차압당하는 이런꼴이 되고 말았다.
남자는 만약 이것마저 무시하고 그냥 집을 나간다면 두고두고 그게 소원이었는데 하면서 원한맺힌 말을 할 것 같은 아내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속이 편치않지만 아이구 마지막 소원 한번 들어주자 하는 심정으로 어지러운 자기 마음의 못도 빼면서 얼기적 설기적 못을 다 빼고 삐거득거리는 나무바닥을 들어 올렸다.
두집 건너 사는 로렌 남편이 그런말을 하지 않았드라면 아내가 부동산 에이젼트를 찾아가서 눈물을 쏙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며칠전에 늙은 그여자 남편이 아내한테 어유오케이? 하면서 살짝 귀뜸하드란다. 자기 집에서 10년전에 이태리 가족들이 한꺼번에 총을 맞고 모두 다 몰살했다는 것이다. 어마마, 그럼 흉가집?! 아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오늘 부동산 에이전트를 찾아갔다.
“여보세오 한 여름에 독구를 읽어버리면 그개가 어디로 가는지 잘 아시죠? 총을 맞고 사람이 떼거지로 죽은 집인데 그런 흉가집을 왜 소개해 주었어요?” 아내가 씩씩거리자 그집은 고객님이 이사오기 10년전에 있었던 일이고 그동안 다른 사람도 수년이나 잘 살았어요. 에이전트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가만히 있더니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고객님 심정이 지금 그 상황인데 오죽 답답하겠어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고객님 마음이 그렇게해서 풀릴수 있다면 저한테 마음 풀릴때까지 원없이 퍼부어 주세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얼마나 많아요? 돈으로도 않되고 세상 무엇을 다줘도 않되는 일이 있는데 고객님 마음 풀릴때까지 무슨 소리를 다 퍼부어도 괜찮다고 각오한 듯이 너무 인간적으로 나오는 상대방을 보고 자기도 기가막히고 슬퍼서 내가 이러면 뭘하나 싶어 엉엉 울고 싶드란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눈이 퉁퉁 불어가지고 풀이 꺽여있었다. 다른 사람처럼 집을 두채 세채 산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돈이 없어서 다운페이를 적게했기 때문에 리파이넨셜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그 모든일이 서러움에 겹쳐 차안에서 울었겠지.
남자는 담배를 하나 피워물고 바닥에 깔린 판자 두개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무심중에 남자가 아래를 보니 제법 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거기 있은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먼지가 뽀얗게 덮혀 있었다. 남자가 뭘까싶어 꽤 무거운 상자를 올려놓고 막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방에서 나온 아내가 그걸보고 깜짝놀라며 소리질렀다.
“여보 뭐하는 거예요? 그거 함부로 손대지 말아요. 사람 시체가 들어있을지 누가 알아요? 뚜껑 열기전에 경찰에 신고해요.” 사람시체?! 한가족이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면서 남자가 휙뚜겅을 열어젖혔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남자와 여자 입에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아! 세상에 이럴수가?! 아내는 어마 어마! 소리만 연발했고 남자도 벌린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냥 한참동안 멍한 눈으로 정신없이 상자만 바라보았다.
아, 꿈만같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돈이냐. 그 상자 안에는 마치 꿈속같이 빼곡히 돈뭉치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나 둘 셋, 가로세로 만불짜리 묶음이 꼭 100만불이었다. “여보 우리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돼.”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아니예요 여보, 지금 우리 교회 건축 때문에 모두 금식중인데 헌금해야 돼요.”
누가 말했나?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고. 미안하지만 사람 마음은 사람 수만큼 색깔도 모양도 다 틀린다.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게 사람 마음이다. 확실한 것은 이틀후에 여자와 남자는 예정대로 그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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