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공공 모임에서 누가 클래식을 뺀 다른 음악은 쓰레기라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본인은 그러지 않다고 하겠지만 대중가요를 뜻하는것 같았다. 더구나 음악을 하는 전문가여서 더 놀랍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으나 정작 클래식음악이 시작된 유럽사람들이나 그 음악을 즐기는 미국사람들도 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이제 서양 고전음악이 한국에 소개된지 100년도 안되는 나라 사람이 한 이야기가 되서 마음이 더 무겁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기는 했는데 당시는 철부지인 20살이 채 안되는 대학 초년생이었을 때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몇년 후인 그때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경지의 발견이었다. 참 이런 것도 다 있었구나 하며 그저 즐겼고 그 음악이 가저다 주는 서양문화가 좋아 누구누구의 교향곡, 협주곡하며 거의 외우다시피하며 들었다. 그때 브람스를 알게되고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이 귀에 익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비시, 그리고 림스키, 콜사코프 등 담배 연기가 자욱한 인사동의 무아다방과 르네상스음악 감상실에서의 공부였다. 걸핏하면 대학강의를 빼먹고 그곳으로 향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전음악을 듣곤 하였다. 공과대학 건축과 동창인 Y군은 어려서 피아노 연주를 사사받아 서양음악에 일가견을 갖고 있던 터여서 그한테 많이 배우기도 했다.
그때 음악감상실에서 우리 음악두목 노릇은 H형이 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대위로 제대한 ‘룸펜’이었다. 나이는 우리보다 10여년 위인 무직자였고 우리가 선생님이라고 하니 그저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생활이 어려운 그여서 우리가 가끔 짜장면과 막걸리를 대접했다. 그의 배경이 어땠었는지 이제 50여년 전 일이어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클래식이나 재즈음악에 퍽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세인트 루이스 블루스’가 어떻고 조지 거쉬인이 서양고전 음악과 재즈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침을 튀겨가며 열을 올린다. 그때 음악하면 대중가수 현인과 남인수 등이 부르던 구성진 유행가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우리 대중가요가 그렇게 유치하게 들렸다. 이곳에 살며 십수년 전에 트럼펫의 대가 윈턴 말세리스를 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클래식과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공연을 한다. 백악관에서 귀빈들에게 여러번 공연하기도 한 대단한 음악가다. 그는 탱글우드와 줄리아드에서 클래식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사람이다. 아무도 이 사람이 대중음악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 아마 두 음악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성숙한 미국관객의 마음가짐에서 오는 결과일 것이다.
재즈음악을 서양고전에 접목시키는 붐이 조지 거쉬인 이외에도 지금도 활발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유리 바쉬멭) 와 섹스폰 주자가 금년초 미국공연때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잍착 펄만 같은 바이올린 연주가도 재즈연주한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 이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대중가요가 재즈에 어떻게 못미치는지 나는 전문가가 아니여서 모르겠다. 아마 조수미같은 사람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불렀다면 한국관객이나 음악인들의 반응이 어땠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얼마전 밴클라이번 피아노 음악경연 대회에서 일등을 한 ‘스츠이’ 피아니스트는 즐거운 때면 우리 대중가요와 같은 ‘엔가’를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한다하여도 일본 음악계에서 그를 질타하는 사람들은 없는 모양이다. 서양 고전음악도 좋지만 우리의 한과 애수가 담긴 대중가요가 이제 그렇게 좋아진다. 더구나 오래 이국에서 살다보니 대중가요가 가져다 주는 향수가 더해가는가보다. 어느 친지가 이야기했듯이 쿨하게 서양음악만 좋아하다가 40이 넘으며 우리 유행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한다. 나도 여흥시간에 내 차례가 오면 장세정의 ‘고향초’를 부르며 내감정에 복받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우리 감정에 충실한 음악을 누가 쓰레기라고 하겠는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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