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매는 듯 했던 공화당이 가을에 들어서면서 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편협한 낡은 사고의 무능한 부시 정당’으로 유권자에게 버림받은 것이 불과 열달 전인데 벌써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정치 분석가가 한 둘이 아니다. 변덕스러운 게 정치여론이긴 하지만 예상보다 상당히 빠른 반전이다.
공화당의 정치공세 모양새는 그러나 아직 그리 바람직하지도, 그리 당당하지도 못해 보인다. 지리멸렬했던 지도부에 갑자기 새 리더가 등장한 것도 아니고, 불황에 시달리는 민생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오바마와 민주당,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헬스케어 개혁을 둘러싼 불만에서 떨어진 반사이익인 셈인데 공화당내 극우 보수진영이 반사이익의 타이밍을 낚아채 파당적이고 극단적인 반 오바마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다.
큰 정부의 세금인상에 반대하는 풀뿌리 조직 ‘티 파티’ 모임이 곳곳에서 열리고, 헬스케어 개혁을 설득하려던 민주당의 타운홀 미팅은 항의주민들의 고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변하면서 ‘불만의 8월’을 미 전국에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오바마는 백인을 증오하는 인종주의자’라는 극언을 서슴치 않으며 러시 림보보다 한 술 더 뜨는 폭스뉴스 토크쇼의 진행자 글렌 벡이 민심 선동에 뛰어난 보수의 대변인으로 부상하면서 공화당의 ‘승전보’는 계속되었다. 백악관 녹색일자리 고문 밴 존스가 과거 급진운동 경력으로 밀려났고, 리버럴 빈민옹호단체 에이콘(Acorn) 직원들의 부정행위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방법이 어쨌든, 보수진영의 공세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 영향력은 오바마 지지도 하향세와 함께 공화당에 재기의 기회를 선사한 것이다. 재기 성공은 아직 멀었지만 희망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극우파 벡을 대표 얼굴로 삼아, 파당적 선동을 일삼는 전략을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다. 그건 국민의 일상을 책임질 진지한 정당의 태도가 아니다. 내년 선거를 위한 카운트다운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번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공화당의 내일이 달려있다.
재기를 위한 공화당의 로드맵은 당 안팎에서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라디오 토크쇼 호스트인 마이클 메드베드의 흥미로운 제안도 그중 하나다. ‘공화당은 진보보다는 보수를 선호하는 다수 미국인의 지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도, 공화당도 중도의 지지 없이는 최종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전제다. 보수와 중도를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도 말해준다. 2008년 유권자 출구조사에 의하면 자칭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보다 12% 포인트나 많았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중도파로 44%를 차지했다. 공화당원보다는 민주당원이 10% 포인트나 많았다. 공화당이 싫다는 응답은 25%나 되는데 좋다는 7%에 그쳤다. 왜 싫은가? ‘편협하고 파당적’이다, ‘극단적이고 부정적’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유권자가 등 돌렸던 것은 공화당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는 당의 이념으로 확실하게 지키고 그 보수적 가치관을 전달하는 스타일은 낙관적이고 합리적인 톤을 지켜 중도파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상냥한 어조로 강경한 보수이념을 미국 속에 깊숙이 심었던 레이건이 그 효과를 증명해준 성공적인 방법이다.
어느 선거에서나 투표의 열기를 가장 뜨겁게 불 지피는 것은 유권자의 분노다. 2차대전 이후 치러진 16번의 중간선거 중 다수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하원 2번, 상원 4번뿐이었다. 현 정부에 실망하고 분노한 유권자들이 야당에 기대의 눈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어제 발표된 라스무센조사에서도 여론의 분노는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에 분노한다는 응답자가 66%에 달했다. 무소속 응답자도 77%나 분노를 표했으니 내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승산 전망은 확실히 장밋빛이다.
2010년 대승을 기대하기엔 그러나 공화당의 현재 형편은 너무 옹색해 보인다.
새로운 리더도 마땅치 않고, 인구변화에 따른 지지층 확보에도 진전이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공화당을 정의해주는 비전’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래야 여론이 ‘분노하는’ 오바마 정책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아니요 당(Party of No)’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헬스케어 개혁도, 교육 개혁도, 이민개혁도 모두 반대만 하고 현실적인 경기회복 대책도, 실업자 구제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게 솔직히 공화당의 현주소다.
아무리 요즘처럼 TV 마다 출연해 헬스개혁안을 홍보하는 오바마에 싫증이 난다해도 ‘정강 없는 정당’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없다. 공화당은 타운홀 분위기에 들떠 내년에 확보할 20석, 30석…을 세며 김칫국을 마시기 전에, 고달파진 중산층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되찾아 줄 수 있는 대안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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