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반갑게도, 경기회복을 알리는 뉴스가 계속되고 있다. 금융위기 1주년을 맞는 이번 주 첫날,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고개 들려는 월스트릿의 탐욕에 강력한 경고를 쏟아내긴 했지만 “이제 폭풍은 가라앉았다”면서 위기가 진정되고 있음을 알렸다. 미 경제정책 수장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의장의 “침체가 끝난듯 하다”는 장밋빛 진단에 더해 소매판매 증가, 제조업경기지수 상승 등 호전된 경제지표들이 발표된 다음 날엔 다우와 나스닥이 함께 뛰어 오르면서 주식시장에도 활기가 넘쳐흘렀다.
그러나 월스트릿과 실리콘밸리에서 조명되는 침체종료를 보통사람들이 사는 메인스트릿에선 아직 체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그늘이 너무나 짙다. 버냉키의장도 경기회복의 발목 잡을 가장 위험한 변수로 높은 실업률을 꼽았지만 보다 강한 경고는 지난 주말 오바마의 수석경제고문에게서 나왔다.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장이 실업률이 “앞으로 ‘몇 년 더’ 용납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보통 경기회복 과정에서 가장 느린 것 중 하나는 일자리 회복이다. ‘고용이 대표적인 경기 후행지표’라는 통설을 감안한다 해도 미국의 고용시장 현황은 너무 어둡고 너무 우울하다.
9월초 연방노동부가 발표한 8월의 실업률은 9.7%다. 그러나 실질적 실업률은 최소 16.8%라고 관련학자들은 지적한다. 풀타임으로 일해야 할 형편인데도 일자리가 없어 파트타임으로 전전하는 900여만명, 구직을 포기한 230여만명 등을 합하면 지금 ‘사실상 실직자’는 3,000만명에 이른다. 그저 단순한 통계숫자가 아니다.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상처입고 신음하고 있다는 의미다. 1,200명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럿거스 대학 연구팀의 최근 서베이는 이들 중 3분의2가 우울증에, 80%가 절망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들을 “구명보트도 없이 지붕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카트리나 이재민”에 비유했다.
실직자뿐이 아니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은 미국의 고용현장 곳곳에 스며있다. 12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ABC뉴스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취업중인 근로자 10명 중 6명이 앞으로의 감원을 우려하고 있으며 3분의 2가 임금삭감 등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을 체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 하트 리서치에선 근로자 70%가 저축의 여유가 없다고 답했고 퓨리서치의 조사에선 50~61세 응답자의 63%가 돈이 없어 은퇴를 늦춰야한다고 대답했다. 은퇴를 못하는 노인의 문제는 그로 인해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의 문제로 직결되면서 실업률은 또 높아지고…
더욱 불길한 것은 고용시장의 전망이다. 현재의 침체가 시작된 2007년 12월부터 2009년 8월까지 사라진 일자리는 690만개로 집계되었다. 경기가 회복되면 없어졌던 690만개의 일자리가 되살아나고 감원 당했던 실직자들이 복직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UC버클리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이번 침체를 지나며 “오쿤의 법칙은 깨졌다”라고 단언한다.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하락하면 실업률이 1%포인트 올라간다’는 경제학자 아서 오쿤의 고용법칙은 그동안 경제성장과 실업의 상관관계에 가장 흔히 적용되어왔다. 이 법칙에 의하면 경기가 회복되면 고용도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젠 사라진 일자리의 대부분은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라이시 교수는 말한다. 경제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경제의 세계화와 기술발달로 인해 더 적은 노동력과 더 낮은 임금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경기가 회복해도 고용시장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이른바 ‘고용 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에 대한 우려가 늘어나는 근거다.
비정하지만 논리정연한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해결책 찾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가 개입하면 달라진다. 유권자에게 가장 민감한 경제지표는 실업률이다. 이해하기도 쉽고 체감지수도 높다. 내년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주당과 백악관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이슈도 일자리가 될 것이다. 실업률을 잡지 못한다면 연방의원들은 물론 오바마에게도 재선의 희망은 장담하기 어렵다.
경제위기가 미국을 지배한 지난 1년간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온 어구의 하나는 too big to fail이었다. 너무 커서 쓰러지게 할 수 없다는 정책은 GM이나 AIG에만 해당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 이상으로 크고 중요한 것이 수천만 미국인이 고통당하는 실업문제라는 걸 오바마와 워싱턴이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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