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퍼블릭 옵션’에 대한 결정적 선택은 피해갔다. 9일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행한 헬스케어 개혁관련 스피치를 통해 퍼블릭 옵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재확인은 했으나 그것이 개혁안 서명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보험인 퍼블릭 옵션이 “시장에 선택권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으나 “다른 대안도 받아드릴 수 있다”면서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현재 헬스케어 개혁 사안 중 가장 뜨거운 감자는 퍼블릭 옵션이다. 싸고 혜택 좋은 공공보험을 도입하여 민간보험과 경쟁케 하면서 소비자에겐 선택의 여지를 주는 이 정부보험이 처음부터 모든 소비자에게 다 오픈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보험 없는 개인과 소규모 기업이 대기업 직장보험과 같은 값싼 보험료를 내고 같은 수준의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개혁안의 작은 한 부분이었던 퍼블릭 옵션은 지난 몇 달 논쟁을 거치며 찬반이 갈리는 절대적 요소로 부상했다. 리버럴 진영은 오랫동안 꿈꿔 온 단일화된 국가운영 전국민 의료보험 실현으로 가는 첫 걸음으로 기대하며 집착하게 되었고, 보수진영은 ‘사회주의화’ 음모라고 공포작전을 동원하며 결사적 반대에 돌입했다. 민주당 대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내분의 넘버 원 이슈 역시 퍼블릭 옵션이다. 하원의 민주당 진보파들은 “퍼블릭 옵션 없는 개혁안은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상원의 민주당 중도파는 “퍼블릭 옵션이 포함된 개혁안은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제 오바마 연설엔 최소한 3가지 목표가 담겨있었다. 그동안 열정을 잃은 듯한 리더십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도 과시해야 했고, 민주당내 내분을 봉합하여 의회내 찬성표도 확보해야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 돌린 여론의 물길을 바꾸는 민심잡기였다.
의회연설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청중은 국민, 특히 현재 별 불만 없는 의료보험을 가진 중산층이었다. 그들에게 왜 개혁이 필요한가, 이번 개혁안이 어떻게 개개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며 무보험자에 대한 가입 확대만이 아니라 유보험자를 위한 사회 안전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했다. 보험료는 무섭게 오르고 있다. 앞으로 10년내 가족당 1년 평균 2만5,000달러로 치솟을 것이다. 병들 때를 위해 가입한 보험인데 중병에 걸리면 가입이 취소되고, 보험이 가장 필요한건 아픈 사람인데 병력이 있으면 아예 가입이 거부되는 것이 현 미국 의료보험의 실정이다. 이 모순을 바로 잡기위한 이번 개혁은 미국인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 대통령의 호소가 얼마나 넓게, 깊게 전달되었는지…‘오바마 효과’는 앞으로 몇 주안에 의회 표결을 통해 구체화 될 것이다.
헬스케어 개혁안의 현주소는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
하원에선 3개의 개혁안이 관련위원회를 각각 다 통과했다. 이 3개안을 통합정리하여 9월말경 하원 본회의 표결에 부칠 것이다. 8월 휴가 중 지역구의 타운홀에서 성난 민심을 체감한 민주당 보수파 의원들의 찬성표 확보가 쉽지는 않겠지만 통과에 필요한 218표는 무난히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다 어려운 것은 상원통과다. 관련 2개위원회 개혁안 중 아직 안나온 재정위 개혁안도 다음 주 중 마무리되어 상원안도 9월중 표결을 예상하고 있지만 필리버스터를 막을 60표 확보가 테드 케네디의원 타계로 민주당만으론 부족하게 되었다. 게다가 보수파 민주당 의원들의 반란 기미도 감지된다. 올림피아 스노우 등 중도파 공화당의원의 가세를 기대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60표 확보가 불가능해지면 마지막 보루인 ‘조정’규정을 동원할 수 있다. 재정관련 표결에서 3분의 2 아닌 과반수 찬성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의회진행 절차다. 공화당은 ‘비민주적’이라고 비난하지만 레이건과 부시 집권당시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여러번 사용했던 방법이다.
1993년 클린턴의 의료보험개혁안이 민주당 내 반대로 표결조차 못한채 폐기된 것은 오바마 뿐 아니라 민주당의원들에게도 산 교훈이 되고 있다. 경기호황에 편승한 클린턴은 96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개혁안에 반대했던 중도파 민주의원들은 94년 줄줄이 낙선했었다. 이번 역시 재선에 급한 것은 오바마가 아니다. 무능한 여당이 되지 않으려면 퍼블릭 옵션이 포함여부와 관계없이 민주당 의원들은 개혁안 죽이기에 앞장 설 입장이 아닌 것이다. 진통을 겪고있는 헬스케어 개혁안이 결국은 통과에 성공할 것이라는 낙관은 이같은 정치적 환경에도 근거한다.
대부분 선진국의 의료보험은 국가가 주도하는 단일화 시스템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며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커버된다. 노인들은 메디케어가 있어 마음의 평화를 얻고있는데 왜 미국인들은 퍼블릭 옵션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국가 안보가 달린 국방과 국민 건강이 달린 의료는 결코 이익을 최우선하는 민간에 맡길 수 없다”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전 수상의 지적이 왜 미국인들에겐 와 닿지 않는 것일까. 오바마 효과가 자칫 죽어가려는 퍼블릭 옵션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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