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인가 창문 밖에서 어렴풋이 아이들이 서로 부르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 즐겁게 하는 것일까. 기쁨에 겨워 그들이 뒤엉기며 몸부림하는 소리들이 청정한 바이얼린의 연주처럼 이 나른한 오후에 울려퍼지고 있다. 안뜰의 잔디 깎는 기계의 단조롭고 아득한 읊조림까지도 나의 나태 취미와 어울려 괜찬케 신선하다.
나의 마음속 한 구석에 조그마한 미소가 피어오른 것인가. 나는 느릿한 의지로 가만히 창문을 연다.
그런데, 내가 연 창밖의 온세상에는 나처럼 무감각한 사람의 눈에조차 돌연 벌써 저만큼 다가선 가을의 모습들이 거기 멈칫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뜻밖의 개안이다. 나의 가슴속 어느 곳엔가 내평생 꿈꾸어 볼 수조차 없었던 어떤 어줍잖은 사랑의 감동이나 억제하기 어려운 벅찬 격동이 불현듯 피어오른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나도 모르게 늘상 나들이하던 나의 작은 정원으로 나선다. 간밤에 내린 세우에도 실개천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예닐곱 마리의 오리가족들이 어느새 달려와 부지런히 자맥질이 한창이다. 이미 들녁에는 우유빛, 노랑 보라 빨강색 들꽃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내 일찌기 저들의 이름을 당췌 기억하려 하지 않은 채 무심히 지냈음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냉정한 행위였는가. 여름내 두텁게 얽혀 내 키보다도 훨씬 웃자랐던 들풀숲들은 어느덧 씨앗을 뿌리고 질펀히 스러져 버려 횅당그레하게 성겨져 있다. 그들 위로 공연히 져내린 낙엽들이 너댓 장씩 겹쳐 쌓여 잇다. 회색 산새의 자그마한 깃털 한 장도 떨어져 있다. 아름답다. 하기는 별날 것도 없는 세속사에 떠밀려 언제 한번이나마 저 풀숲의 연약한 이파리, 깃털 한 장을 제대로 살핀 적이 있는가.
잘 알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강산 백두산 풍악놀이 잔상에 가위눌려, 실은 웅장하고 지천으로 펼쳐져 있는 이 캐나다의 대자연을 단 한 차례도 곰곰 되새겨 볼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나의 이 보잘것없이 보였던 일상의 오솔길에 발을 내딛은 순간, 발밑의 대지가 전하는 부드러운 이완감과 그것이 나의 육신을 촉촉히 쓰다듬는 희열을 깨닫는다. 그것은 너무나 상쾌한 자극이어서 나는 벼란간 파바로티나 도밍고 흉내라도 내면서 젊은 시절에 부르던 가곡 한 곡쯤 금빛 목소리로 뽑아올리고 싶어 몸을 떤다.
잔디가 뿌리내린 저 두터운 토양은 아마도 끊임없는 생명의 발아를 격려하는 원천이리라. 밟아보면 그것은 가장 질좋은 카핏보다도 더 포근하게 나의 가슴을 더듬는다. 이것은 다른 어떤 종류의 사랑보다도 더 신선하고 언제나 어여쁘다.
확실히 이 가을은, 지난번 어느 시인이 발견하였듯이, 마치 이른봄의 마른 나무가지들이 부옇게 밝아지면서 순수한 시골처녀가 겨자색 옷가지를 조심조심 차려입을 때처럼 멈칫거리지 않는다. 이 가을은 차라리 물색 모르는 떠거머리 총각처럼 보다 거칠고 격렬하게 나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가을의 단풍나무들은 이미 계절을 제먼저 알아채고, 가지 끝쪽에서부터 가볍게 몸을 흔들며 의상을 갈아입는다. 이 가장 위대한 배우, 가을나무들은 연록색-노랑-연분홍-오렌지에 이어 새빨간 적색과 스칼렛으로 불타오르고, 그리고 최후로 굳건한 담홍색에서 갈색으로 현란한 색깔의 향연을 마감하며 낙하한다. 이것은 모든 가을의 벅찬 감동이자 나에게는 사랑으로 가득찬 계절의 미각이다.
나의 발걸음은 가벼운 환희에 들뜬 채 날듯이 달린다. 나의 발길 앞에서는 일광욕을 즐기다 화들짝 놀란 철써기, 쌕쌔기, 들메뚜기, 온갖 풀벌레들이 분주히 길을 열며 튀어오른다. 갈색의 한 어린 실뱀도 느릿하게 풀숲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얼마나 많은 풀숲의 주인들이 오늘 나의 이 산책길에 동행하고 있는가! 그뿐이 아니다. 보기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저 옷나무 같은 작은 허드레 떨기나무가 어느덧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한 에닐곱 색깔로 성장하고 이 가을 한복판에 선 채 당당하게 빛나고 있다. 나는 공연히 중얼거린다. 아니, 이처럼 하찮은 떨기나무가 캐나다가 자랑하는 저 모든 단풍나무들의 프라이드를 제치고 어떻게 이처럼 가을 향연에 앞장설 수 있는가.
정말 믿을 수 없다. 더욱이 그 나뭇가지 사이에는 천의무봉의 솜씨로 틀어 어여쁘게 걸어놓은 어린 새들의 보금자리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나는 여름내 이 길을 왕복하였으나 그들의 보금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곳을 떠난 어린 생명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올랐을까.
나는 쓸쓸히 귀로에 선다. 갈잎들은 나의 등 뒤에서 끊임없이 바스락대며 소곤대고 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돌아본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만 저희들끼리의 놀이에 흥겨워 한꺼번에 수십 수백닢으로 날아떨어지는 낙엽들의 춤사위만이 연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햇빛과 더불어 온갖 색깔로 비상하다가는 최후로 황금색으로 반짝이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나는 이, 계절의 청명한 미각을 뭉클하게 온몸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낙엽들은 지상에 떨어져 어느 새 그 부요하고 당당하던 모습을 버리고,푸석 말라버린 한줌 갈색의 시신으로 대지 위를 딩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결코 최후의 색깔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오히려 어린 생명의 순수에서 어느덧 성숙되고 정리되어 더 위대한 새출발을 예고하는 윤회의 깊이이자 우주의 교향악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