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가 뒤숭숭하다. 폭염 속에 14만 에이커의 삼림과 60여채의 주택을 삼켜버리고도 일주일째 계속 타오르는 남가주의 산불 때문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를 파산위기로 몰아갔던 재정난과 예산삭감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의 항의시위가 잇달았고 공무원 노조와 각 기관들의 주정부 상대 소송이 봇물을 이루었으며 평일의 관공서에 휴무사인이 나붙는가 하면 앞으로 1~2주내에 주립공원 100개가 폐쇄조치를 당하게 된다.
지난 60여년동안 75만명 주민을 대상으로 1만여회 서베이를 실시하며 캘리포니아를 분석해온 필드여론조사의 창설자 머빈 필드는 지금이 “캘리포니아 최악의 시기”라고 단언한다. ‘높은 세금과 엄격한 규제, 노조 비위맞추기와 극단적 환경보호주의로 재난을 부르며 리버럴리즘이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한 곳’이라고 동부의 보수진영 칼럼니스트들도 독설을 토해낸다.
물론 상태는 심각하다. 대단히 심각하다. 세금은 높기로 전국 10위권에 드는데 퓨센터의 주 등급 2008년 보고서에 나타난 순위는 50개주 중 41위, 재정 등급은 더 나빠 49위, 꼴찌에서 두 번째다. “교도소는 넘쳐나고, 교육은 초라한 바닥 수준, 극단적 이념대립에 바쁜 주의회는 예산안 하나 제때 통과시킬 능력이 없는데, 해마다 반복되는 교착상태를 타협으로 풀어낼 원숙한 경륜의 리더는 키우지 조차 않는다…” 캘리포니아가 이렇게 위기라는 건 이제 전 세계에 알려진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드림’의 부음을 쓰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가 기회다’는 캘리포니아에도 해당되는 진리이니까. 망가진 주정부의 기능을 고치고 바로 잡아 되살리면 된다.
‘캘리포니아 살리기’ 노력은 이미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의회엔 30여개 개혁법안이 상정되었고 각종 기관과 단체들이 모색해온 해결책들은 일부 구체적으로 제시되면서 주 전역 곳곳에서 세미나와 타운홀 미팅을 통해 찬반논의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념 따라, 득실 따라 원인도 각각이지만 간추리면 이렇다 : 1978년 재산세를 대폭 삭감한 주민발의안 13 통과로 시작된 주정부의 기능부진은 소수의 부유층 소득세에 과잉 의존하는 불안정한 세제의 결함과 함께 만성적자를 부르며 재정위기를 초래했고, 무능한 정치권은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으며, 불합리한 선거제도는 정치권의 무능을 심화시켰다.
해답은 개혁이다. 정부구조도, 선거제도도, 세제도 다 바꿔야 한다. 어느 것 하나 간단하고 쉬운 것은 없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은 9월말 제출될 ‘21세기 경제커미션’ 14인 위원회의 세제개혁 제안서다. 최종안 합의는 아직 멀었다는데 판매세와 기업세를 폐지하는 대신 서비스 분야를 포함한 새로운 영업 순수입세(business net receipts tax)를 신설하고, 상업용 재산세를 인상하며, 인컴택스는 단일세제를 도입하고, 탄소세와 석유시추세를 부과하며…흘러나오는 소문만으로도 이미 벌집 쑤신 듯 각 이해당사자들의 장외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주정부의 원활한 운영을 발목 잡는 주 헌법의 대폭 개정을 위한 헌법회의 소집도 적극 추진중이다. 북가주 275개 대기업주 모임인 베이지역 카운슬이 앞장섰지만 헌법회의에 참석할 대의원 선출방법 결정부터가 험한 앞날을 예고한다.
진보와 중도가 함께 추진하는 개혁은 주의회 예산안 통과에 필요한 찬성표수를 현행 정족수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낮추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예산안과 세금인상안 통과에 3분의2 찬성규정을 고집하는 몇 안되는 주 중 하나다. 먼저 의회 다수당이 예산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예산안은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고 보수의 반발이 거셀 세금인상안은 3분의 2 규정을 유지하는 단계적 개혁으로 가면서 의회의 교착상태를 풀어가자고 초당적 연구그룹 캘리포니아 포워드는 제안한다.
현재 주의원은 임기제한법에 의해 2년 임기의 하원은 3번, 4년 임기의 상원은 2번이상은 못하게 되어있다. 주의회에서 전문성과 경륜을 찾기 힘든 이유다. 현재 캘리포니아를 이끌어가는 최정상의 리더 3명, 주 상하원 의장과 주지사의 재임경력을 다 합해도 10년이 채 안된다. 임기제한 완화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있다.
비당파적 주의회 구성을 위해 당 경선을 오픈 프라이머리로 바꾸자는 제안도 일리가 있고 주민발의안 남발을 규제하자거나 주의회를 효율적 파트타임제로 하자는 개혁안에도 호응도가 적지 않다.
어떤 방향으로든 개혁은 실현되고 변화는 올 것이다. 중요한 개혁안은 대부분 주민투표를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 내년 6월부터 예선과 본선, 특별선거를 통해 선거에 회부될 것이다. 무엇이 누구에 의해 왜 추진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의견을 보태야 한다. 그동안 ‘남의 일’ 같았던 주정부 재정위기와 예산삭감이 나의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지금 우리 모두는 절감하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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