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한반도에 대화의 분위기가 싹 트기 시작한다.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미국의 여기자 석방이라는 명분으로 평양을 깜짝 방문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이어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평양체류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5일간 연장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
5일 동안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애간장을 태우며 남한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킨 김정일 위원장도 대단하지만 5일을 버티며 평양에서 기다린 현정은·정지이 모녀도 대단한 여걸들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결과는 아직 구체적으로 모른다. 단지 미국과 북한이 모종의 딜을 하고 있다는 추측뿐이다. 그에 비해 현정은 회장의 방문 성과는 구체적으로 보인다. 우선 금강산 관광재개를 비롯한 여러 선물 보따리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5개항에 이르는 그 선물 보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새 선물은 없고 옛날에 있었던 것을 새 보자기에 싸서 마치 선물 보따리처럼 포장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약 4개월이 넘는 기간 개성공단에 억류되어 있던 현대 아산직원인 유성진씨를 큰 인심 쓰듯 석방해 주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고위 조문단을 파견해 하루를 더 연장 체류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슬쩍 터주며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취하고 있다. 참 기가 막힐 정도다. 작금의 이런 정황을 보면 미국·북한, 그리고 남북대화가 조만간 재개되리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북한이 최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성 김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북한 방문 초청 의사를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져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작 보즈워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은 분명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지난 8월26일부터 금강산에서 적십자 회담도 열리고 있지 않은가? 적십자 회담이 아무리 비정치적이고 인도주의적이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 얘기이고 적십자 회담도 회담은 회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앞으로 적십자회담을 제외한 북한과의 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즉 북한의 협상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잘 아는대로 ‘북한의 협상술은 뛰어나다’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북한 당국이 비장의 보도로 잘 써 먹고 있는 ‘벼랑 끝 전술’은 마치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에서 공연했던 ‘태양의 써커스’를 능가하는 곡예를 보는 듯하다. 외길 철로에서 마주보며 기차가 달리다가 갑자기 선로가 하나 더 생겨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피하는 장면 같은 북한의 협상술은 경탄을 자아낸다. 그것도 무기와 협상의 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해서 말이다.
이제는 북한과의 협상에 미국의 한인기업인이 움직여야 할 때다. 필자가 북한의 협상력을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것은 아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능한 북한 당국과의 협상에 이분법적, 그리고 흑백논리에 익숙해진 한국의 관료, 기업인들보다는 재미기업인들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재미 한인기업인은 한국과는 문화, 역사가 전혀 다른 미국이라는 곳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다. 미국 기업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인들과 같은 정경유착 케이스가 거의 없다. 열심히 노력한 산물로써 일구어 낸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 기업인들의 사고는 대부분 유연하다. 이분법적, 혹은 흑백논리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칼라가 어찌 흑색, 백색만 있는가? 회색도 칼라고 노란색도 칼라가 아닌가?
오늘의 경제대국인 중국의 기초를 만들고 실행에 옮긴 등소평의 해외 중국인 정책을 들여다보면 지혜를 얻을 수가 있다. 등소평은 ‘흑묘, 백묘’ 론을 제시해 실용주의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 주었다. 쉬운 말로 간단히 표현하면 ‘쥐 잡는데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 구분할 필요 없다, 쥐 잘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이다. 등소평은 해외에 흩어져있는 재외 중국인들의 자금을 끌어 모아 그 돈이 씨앗이 되어 지금은 2조 달러가 넘는 달러를 보유해 달러를 찍어 내는 미국을 향해 기축 통화에 자국 위안화를 끼워 달라고 떼를 쓰고 있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다. 불과 십년 전 1불의 위력이 대단했던 중국을 생각하면 중국인의 저력,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정책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타이완과의 관계를 재외 중국기업인들을 활용해 타이완 정치인, 기업인들을 개선시키고 급기야 이제는 ‘양안교류’라는 명분으로 대륙의 중국인, 타이완 인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는 단계까지 발전 되었다. 이 모든 성과들이 대부분 ‘화상’이라고 부르는 해외 중국기업인들의 활동 덕택이다.
이제 본국 정부 당국은 해외 기업인, 특히 재미 기업인들을 활용해 북한 당국과의 개선을 도모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한국의 특정 몇 기업인이 북한과의 교역을 독점하는 것은 언제 어느 때 중단될 수도 있지만 미국시민권을 소유한 한인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국제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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