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이 끝나가는 31일 밤. 한인타운에서 열린 ‘마크 김 후보 후원의 밤’은 성공적이었다. 2만 달러 가까운 모금액에 선거캠프의 재정담당관은 희색을 띄었다. 주최 측도 “불경기라 걱정했는데~”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60여 참석자들의 면모였다. 황원균 북버지니아 한인회장이 주도한 행사지만 김영천, 신근교, 허인욱 등 워싱턴 지역 주요 한인회장들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친소관계가 약하거나 경쟁관계의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잘 참석 않는 한인사회의 불문율은 깨졌다.
마크 김 후보와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의 뜻이 좋아서” “한인을 꼭 버지니아 주 의회에 보내야겠기에”라서 찾았다 한다.
버지니아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메릴랜드 인사들도 보였다. 이동희, 이용진 전현직 평통 회장에 몽고메리한인회 김용하, 서재홍 전현직 회장 등이다.
원로들도 나섰다. 문흥택 전 한인연합회장은 김용욱 전 이사장, 신현동 전 사무총장 등 친구들과 함께 참석해 거금을 선뜻 내밀었다. 이내원 한국학교협 이사장은 개인 일정으로 뒤늦게 참석해 후원금을 보탰다. 최병근 전 한인연합회장도 다른 일정 때문에 거금을 미리 냈다. 데이빗 전 사장 같은 이는 리치몬드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다.
그 성원에 김 후보는 “버지니아 주에 한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자”고 연설하다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이날 모금 파티의 주인공은 어찌 보면 김 후보가 아니라 ‘범 동포사회’였다. 그 한마음은 11월의 승리를 약속하는 보증수표처럼 보였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그 간결한 속담처럼 마이너리티들이 희망을 여는 길은 단결밖에 없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밤이었다.
사진설명- 북한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로 향하는 여기자들.
-4단 박스
북한 억류됐다 풀려난 여기자들
^^ “체포당시 중국땅에 있었다”
“북한에 있던 시간 1분도 안돼”
“증거 없애려 취재노트 찢어 삼켜”
북한에서 풀려난 두 명의 미국 여기자들은 북한 국경을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중국 쪽으로 나왔으나 뒤쫓아온 북한군 병사들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북한 억류 경위를 처음으로 밝혔다.
두 기자는 북한군에 잡힌 뒤 취재노트를 찢어 삼키는 등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커런트 TV의 로라 링, 유나 리 등 두 기자는 1일 커런트 TV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 땅에 있었던 시간이 “1분도 채 안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건이 벌어진 지난 3월 17일 잠시 북한 국경을 넘어갔다가 다시 중국 쪽으로 나왔으나 소총을 들고 뒤쫓아온 두 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자신들을 강제로 붙잡아 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 군인들이 우리를 체포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다시 중국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며 “우리는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작은 나무 풀과 땅바닥 등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매달리며 버텼지만 군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두 여기자는 “그들(군인들)은 얼어붙은 강을 넘어 우리를 북한 땅으로 마구 끌고 간 후 가까운 군부대로 데려가 감금했다”면서, 이후 140일 동안의 억류 기간에 “서로 격리돼 반복적으로 신문을 받았고 결국 재판에 회부돼 12년 강제 노역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당시 국경을 넘어갈 때 표지판은 없었지만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건너갈 때 국경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두만강을 건너며 길을 이끌던 조선족 안내인이 탈북자들이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마을을 손으로 가리켰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어 중국 쪽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절반쯤 건너왔을 때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두명의 북한군이 소총을 든 채 쫓아오고 있어 본능적으로 뛰었다”고 다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가이드와 커런트 TV의 프로듀서 미치 코스는 잡히지 않고 달아났으나 두 여기자는 끝내 북한군에 붙잡혔다.
두 기자는 “(잡히기 전) 북한 땅에 있던 시간이 1분을 넘지 않지만, 이 1분은 매우 후회되는 1분”이라고 고백했다.
당시 가이드에 대한 미심쩍은 감정도 털어놓았다.
이들은 “돌이켜보면 가이드가 마지막 순간에 출발 장소를 바꾸고 중국 공안의 외투를 입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면서 “그러나 그를 따라가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결정이며 우리는 지금까지도 북한에 억류된 어두운 기억들로 이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으로 끌려간 직후에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없애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평양으로 압송되기 전 이들에게는 잠깐 소지품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두 기자는 방 밖에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몰래 취재노트를 찢어 삼키거나 비디오테이프를 훼손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평양에서 북한 당국의 신문을 받을 때에도 취재원과 인터뷰 대상자들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어 자신들이 석방된 이후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에서 활동해오던 탈북 지원단체와 수많은 탈북자가 더욱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들의 활동은 매우 용감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두 기자는 “많은 사람이 이런 고난을 이겨낸 우리의 강인함에 대해 물어오지만, 우리의 경험은 북한에서 살아가는 분들이나 중국에서 탈북자로 사는 이들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라며 “이분들과 탈북지원단체의 고난이 잊혀지지 않기를 소망한다”며 글을 끝맺었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