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밤 10시 이후에 오는 전화치고 좋은 소식은 아예 없기 때문에 너는 울려라 목이 쉬도록 울어봤자 내가 집에 없을 때 온걸로 치자하고 모른척 했다. 그랬더니 이래도 안받어? 누가 이기나 보자고 끝없이 쟁쟁 울렸다.
나는 문득 며칠전에 한국으로 나간 남동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여보세요 했더니 대뜸 나야! 하고 착 가라앉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내가 재차 물어도 상대방은 그말 한마디만 해놓고 가만히 있었다.
남편 목소리도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요세미티 구경간 남편은 죽었다 깨어나도 집에 전화거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미친놈이야 쓸데없이?!
그런데 다음날도 똑같이 정체불명의 그런 전화가 왔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고 사실 어느 여자치고 한밤중에 난데없이 불쑥 나야! 해놓고 가만히 있는 남자 목소리를 듣고 떨리지 않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장난질 전화거니 했지만 두번째가 오고부터 갑자기 긴장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대체 누굴까? 나는 마침 한국에서 관광차 놀러온 숙모에게 우리집 전화번호 누구 준 사람 없느냐고 물었다.
“전화번호 줄 사람이 어딨노 와?” 숙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야, 야, 쟈봐라. 쟈가 느그 조카 맞나? 아이구 죠지야.” 숙모가 또 방에서 풀쩍풀쩍 뛰는 죠오지를 보고 야단이다. 남동생은 죠오지 방학인데 이때에 한국 갔다오면 되겠다고 두 내외가 아이를 우리집에 맡겨놓고 갔다.
“야 죠지야. 할메가 부르면 ‘예’ 하고 빨리 와야지” 죠오지도 어지간히 성가신지 ‘예’ 올께요, 하고 냉큼 다가왔다.
“야는 또 말을 와 그렇게 하노? 왔습니다 해야지 올께요가 뭐꼬?”
“영어로 아임 커밍이니까 올께요가 맞잖아?”
“아이구 죠지야 니 내가 무슨말 하는지 알기는 아나?”
“노.”
“노요! 해야지 어른한테 노가 뭐꼬? 노요 해봐라.”
그러자 죠오지가 노요?! 장난으로 한번 그렇게 말해보더니 엥 하고 웃으며 저만치 달려갔다.
“우리 할메 죠오지를 바보로 만들겠다. 할메 죠지가 아니라 죠오지예요. 빨리 죠지 하지말고 길게 죠오지 해봐요.”
우리 아들이 듣고 있다가 그렇게 말하자 와, 내말이 틀렸나 죠지아이가? 하고 숙모는 이상한 소리 다 한다고 내얼굴을 보았다.
“쟈가 언제부터 할메 말에 조렇게 꼬박꼬박 토를다노? 지랄한다. 니나 죠지 잘해라.”
나는 리빙룸에서 식구들과 같이 얘기 하면서도 영 불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고 하니까 옛날에 알겠다! 하겠지만 밤 마실 갈 엄두도 못내고 지내다가 남자보는 눈이 젬뱅이가 되어가지고 지금 남편을 만났다. 세상에 경상도 하고도 부산 말은 도대체 왜 그런지 나한테는 좋은 말도 꼭 화난 것 같이 들린다. 그렇잖아도 무뚝뚝한 사투리에 남편은 어디서 배웠는지 곤조라는 말을 얼마나 잘 쓰는지 걸핏하면 곤조부릴래? 다.
식당 주방장이 곤조 부릴때는 맛없이 먹으라고 손님 밥을 고봉으로 꾹꾹 퍼담아 준다지만 가정주부가 곤조부릴일이 뭐 있다고 곤조부린다고 하는지. 심지어 내가 잠자리에서 조금 흥분한 기색을 보여도 무안하게 곤조부릴래? 하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남편이다. 세상에 당신 그런말 할 때 마다 참새를 손에 들고 벽에 딱 집어던지는 것 같이 내가 얼마나 심한 충격을 받는지 알아요? 했더니 대뜸 뒷골목 문자 같은 말로 꼬장부리나? 그러면서 째려보았다.
남편이 그런 사람인데 밤중에 생판모르는 남자가 자기 아내한테 아주 낮은 저음으로 ‘나야!’ 하는 전화가 왔다고 할 때 가만히 있겠는가. 나는 내일 모레 돌아오는 남편 생각을 하면서 그 맛있는 물맛도 하나도 맛없이 밍밍하고 얼마나 떨리면 몸이 가려운 그 알레지가 다시 도졌다.
내가 정신차리고 한번만 더 전화가 와봐라 가만있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을 때였다.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누나집에 이상한 전화온거 없어? 나는 직감적으로 깨닫고 소리쳤다.
“니가 그랬어?”
“누나 옛날에 누나하고 결혼하겠다던 신씨 있잖아? 아이 하나 딸린 그 아저씨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가 뭐야? 여기와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누나를 오매불망 잊지 못하고 말을 하면서 연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는거 있지?”
“뭐라구? 니가?! 야 이놈아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얼마나 가슴 떨었는지 알어? 야!!”
나는 집이 떠나가라고 전화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오기만 해봐라 나쁜놈. 나는 놀란 심장에 분이 가시질 않아 애매하게 옆에 있는 죠오지를 보고 바락 소리질렀다.
“야, 너 아버지는 왜 그모양으로 죠지냐?”
그러자 죠오지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모 죠오지는 나야. 내가 죠오지야.”
“그래 너도 죠지고 너 아버지도 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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