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방상원 보건위원회가 헬스케어 개혁안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던 중, 사사건건 팽팽하게 맞서던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한 순간 ‘초당적 합의’에 도달했다. “테드 케네디가 여기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란 민주당 톰 하킨의 한탄에 “맞아, 테드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라고 공화당의 오린 해치가 즉각 동의한 것이다. 물론 케네디라면 “일방적인 리버럴 법안을 강요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비난이 해치의 본뜻이긴 했다.
헬스케어 개혁법안에 있어 지금은 ‘케네디 타임’이다. 나무보다는 숲을 살리기 위해 양보하고 합의하며 법안을 타결시키는 그의 노련한 협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종양 투병 중이었던 케네디는 지난 4월 이후 의사당에 나오지 못했고 “케네디가 있었더라면 헬스케어 개혁법안은 훨씬 진전되었을 것”이라며 동료들은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한다.
그는 리버럴 민주당의 강력한 기수였고 보수진영의 단골표적이었지만 양진영을 아우르며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적 능력이 탁월했다. 공화당 대상 서베이에서 가장 함께 일하기 쉬운 민주당 의원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다. 그는 지지자의 충성뿐 아니라 반대자의 신뢰도 얻어낸 ‘존경받는 적’이었다. 함께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공동제안했던 존 매케인에게서 “케네디는 성공적 협상의 진수인 적절한 양보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헬스케어 개선추진에 뜻을 같이한 오린 해치와는 파트너를 넘어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공립교육 개혁을 위해 ‘리버럴의 공적’ 조지 W. 부시대통령과 기꺼이 손잡고 ‘낙제학생방지법’ 통과에 앞장섰던 케네디에게 ‘약속을 지키는 믿을만한 정치인’이라는 찬사를 보낸 것은 부시의 교육부장관 마가렛 스펠링스였다.
그의 한결같은 관심사는 사회정의 실현이었다. 가난하고 힘없고 불우한 약자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열어주려는 약속이었다. 8선 상원의원 케네디의 48년 의정생활은 이 약속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 이념의 양끝으로 멀어지는 진보파 민주의원들과 보수파 공화의원들의 아슬아슬한 연대를 이끌어내며 2,500여개 법안을 작성했다. 지난 반세기 미국의 주요한 모든 이민법안, 모든 교육법안, 모든 헬스케어법안, 모든 민권과 모든 평등 법안엔 예외 없이 그의 흔적이 뚜렷하게 각인되어있다.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이란 평가를 받는 성공적 공직생활과는 달리 그의 사생활엔 흠집이 많았다. 자랄 때도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에 복학은 했지만 하버드 시절 친구에게 부탁한 대리시험으로 퇴학을 당하기도 했고 정치입문 후에도 술과 바람기, 아내의 알코올중독 등에 얽힌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존의 지성’과 ‘로버트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케네디가의 막내아들인 그 역시 당시엔 최우선 민주당 대선후보로 꼽혔다. 백악관을 향한 그의 꿈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은 1969년 7월18일의 교통사고였다. 휴양지 차파퀴딕 섬에서 파티 후 한밤중에 여성 선거운동원을 태우고 그가 음주 운전하던 차가 다리에서 추락한 것이다. 그는 살아났고 여자는 죽었다. 법정에선 2개월 집행유예로 마무리되었지만 차파퀴딕은 그 후 정치인 케네디에게 영원한 종신형이 되었다.
그가 연이은 암살에 의해 미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로망으로 새겨진 형들에 이어 ‘케네디 신화’를 계승해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된 것은 80년 민주당 경선에서 카터에게 패한 후였다. 그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고 희망은 살아있으며 꿈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감동의 연설로 미국을 사로잡으며 케네디는 대통령의 꿈을 완전히 접고 ‘위대한 상원의원’에 전념하는 새로운 장, 정치인생의 제2막을 열게 된다.
이제 이 생에서 퇴장하는 그의 마지막 길에 온 미국이 애도를 보내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향상시켜주었는지 결코 모를 것이다. 자신들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투쟁해 주었는지도. ”
그 ‘수많은’ 사람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1965년 그가 앞장 서 통과시킨 ‘케네디 이민법’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할 것이다. 마이너리티와 이민자, 가난한 근로자와 노인, 어린이와 장애자들의 평등한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자신의 신념을 그가 중간에 굽혔더라면 우리의 오늘과 우리 아이들의 내일엔 평안과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을 갚을 차례다. 사회정의 실현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그의 유산을 계승해 나가는 책임을 우리도 함께 나눠가지는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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