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가 DJ는 빨갱이라며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 분을 본 적이 있었다. 대충 보아도 칠순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DJ는 빨갱이라고 하시던 그 어르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던 정치 거목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헌신했던 위대한 정치인이 영면에 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은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으로 뒤덮여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속에는 수많은 질곡의 시간들이 함께 그려져 있으며 수없이 많은 영욕의 순간들이 녹아내려 있다. 또한 그에게는 ‘인동초의 삶’, ‘행동하는 양심’처럼 수많은 수식어가 함께 뒤따르기도 했다. 그럼 DJ는 한국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이었을 뿐일까? 아닐 것이다. 그는 국민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한껏 올려놓은 인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이룩해 놓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얼른 생각나는 것만해도 얼추 수십 개는 될 것이나 가장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DJ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도 성사시키고 남북 이산가족의 정기적인 상봉과 금강산 관광길을 열었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지도력을 통해 짧은 기간에 벗어날 수 있게 했다. 과연 우리 역사를 통틀어 이만한 인물이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빨갱이’라는 색깔론으로 덧칠된 삶을 살았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DJ에 대한 ‘빨갱이’ 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동토의 땅에 민주주의라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게 만들어 준 사람, 한국의 문화콘덴츠를 업그레이드 시켜 한류열풍을 일게 만들고 문화를 수출한 장본인,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IT산업을 부흥시킨 인물이었음에도 그 덧칠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왜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971년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자(일부 영남지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음) 박 전 대통령의 일부 추종세력에 의해 조작이 시작된 것이다. DJ는 그러나 이후에도 군부독재와 철권통치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알리고 민심을 결집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더욱 더 그에게는 ‘빨갱이’라는 덧칠이 진하게 칠해진 것이다.
이제 그는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는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유서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로 떠났다. 하지만 기자는 오래전의 인연으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유추해봤다.
지난 1991년 지방선거가 한창 열리고 있던 6월의 어느 날 기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독인터뷰를 위해 반나절 그의 차를 함께 타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그와 나눈 얘기 중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뤄야 할 것은 ‘망국의 병’인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을 없애는 것이에요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뿐만 아니라 오랜 가뭄으로 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되어버린 영호남간의 골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남대학교 이수인 교수를 전남 영광, 함평지역에 공천을 주어 국회의원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경북 울진 출신인 김중권씨를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선택하는 등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보여줬다.
이제 그를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의 메시지는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이룩해내는 일일 것이다. 영호남간에 생겨난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고 더욱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생전의 뜻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그에게 덧칠해진 ‘빨갱이’ 소리도 지역감정이 없어지면 당연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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