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초 한국 신문들은 발사를 앞둔 ‘나로’호의 대형 컬러 사진으로 장식되었었다. 애석하게도 발사가 연기 되었지만‘나로’는 한국 땅에서 발사되는 첫 우주발사체로 상당히 감개무량한 사진이었다.
미국 우주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했을 당시 어린 나는 열성적으로 아폴로 발사 중계도 보고 모형 로켓들도 만들었었다. 당시의 흥분은 지금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곧 우주로 떠날 멋진 로켓에는 ‘USA’가 아닌 한글이 쓰여 있다. ‘대한민국?나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최근 연방우주항공국(NASA) 주최 과학자 토론회가 미래 우주산업에 관한 추천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달나라나 화성에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엄청난 비용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상황 속에 ‘나로’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내게 어린 시절의 흥분을 다시 자아냈다. 한국의 로켓이 우주에 한국의 미래를 펼치는 첫 단계라는 상상 속에.
나 혼자만의 공상은 아닌 듯 싶다. 한달 전 영화관에서 ‘달(Moon)’이 상영되었다. 1970년도 우주영화 스타일의 심플한 공상 과학영화로 약간의 흠은 있지만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한국과 관련된 사항에서. 달 위의 우주 정거장에서 혼자 기거하는 우주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우주 정거장의 이름이 ‘사랑’인 것이다. 그가 한국 대기업체의 고용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왜 한국어였을까? 복제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니, 몇년 전 초기 복제과학에 한국이 관련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영화 속에는 또 다른 한국말이 나왔다. 비디오 속의 그 기업체 서양인 직원의 말인 “안녕히 계세요” 다. 내가 그랬듯 한인 관객들도‘계세요’가 아닌 “안녕히 가세요” 가 맞다고 지적할 지 모른다. 지구로 가기 위해 달을 떠나는 우주인에게 하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되돌아 보면 심사숙고해 선택된 말임이 이해된다.
‘나로’ 우주선 사진을 보게 된 것은 양용은 씨가 PGA 챔피언쉽의 우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TV 실황중계로 보다가 그가 우승한 직후 한국 신문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는 당시 통역인과 한국말을 주고받았다. 미국 스포츠 TV 방송 사상 한국말을 가장 오래 들을 수 있었던 방송이 아닌가 싶다.
그 며칠 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가 큰 뉴스로 전 세계 미디어에 퍼졌다. 그는 한국인이 별로 입에 오르지 않았던 시절 미국 한편에 한국인을 들여 놓기 시작한 인물의 하나라 하겠다.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을 받기 훨씬 이전에 이미 유명 정치인으로 미국에 자리 잡은 사람이었다.
1987년 한국인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한국의 언어, 역사, 정치를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디트로이트의 한 책방에서 작고 칙칙한 검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의 ‘옥중서신(Prison Writing)’이었다. UCLA 출판사가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번역 출판한 것이었다. 그 첫 페이지는 감옥에서 깨알 같이 쓴 글씨의 한글 사진으로 아주 감동적이다.
당시 난 그 책에 그리 감동을 받지 않았었다. 니체, 루소, 불트만 등 서양의 유명 철학가와 사상가의 이름들이 여기저기 있어 마치 부자들이 구찌, 프라다, 샤넬 등의 디자이너 이름을 입에 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깊이도 없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한국에서 살때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국민들로부터 점점 인기를 잃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그 책을 다시 꺼내 읽는 지금, 이제서야 그의 바닥 깊은 서글픔을 읽으면서 그가 이해되었다. 감옥에서의 그가 영화 속 우주인의 모습으로 겹쳐지면서. 달에서 지구를 열망했던 우주인처럼 차갑게 단절된 외로운 감옥에서 위대한 이상과 훌륭한 사상가를 갈망했던 그의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훌륭한 사상가들을 찾을 장소가 로켓이나 과학기술처럼 점점 동쪽으로 꾸준히 움직여지고 있다. 특히 그의 모국인 한국으로.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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