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교통사고...왼쪽다리 절단...한달간 의식불명...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크고 작은 고난들은 불가피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고 견뎌내느냐에 따라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고로 얻은 장애를 결코 저는 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당당하게 맞설 준비가 돼있습니다.” <이재성 씨의 에세이 중에서 >
올해 발표된 한 장학재단의 장학생 명단에 포함된 워싱턴 지역 학생은 총 17명. 신청자들의 서류를 평가하던 심사위원들은 한 에세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재성(26) 씨가 자신이 겪은 예기치 못한 고난들을 재료로 주변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두 장짜리 영문 에세이는 20대 청년의 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년 봄 조지아텍 전자공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는 이 씨는 남보다 한참 뒤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삶에 대한 긍정과 열의는 누구보다 강렬하다. 왼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오른 팔에 10 파운드 가량의 버팀 장치를 착용하고 다니는 그가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긍정의 인생 방정식을 터득한 것은 5년 전의 엄청난 경험 덕분이다.
2004년 9월의 어느 늦은 밤에 일어난 사고를 이 씨 자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늦게 까지 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훼어팩스의 브래덕 로드를 달리고 있었다. 깜박 잠이 든 것 같았었는데... 그 이후는 가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뿐이다.
사고가 일어난 건 10일 밤 11시 경이었는데 새벽 1시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는 보호자 동의도 없이 용단을 내려야 했다. 완전히 부서져 버린 왼쪽 다리를 급하게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씨는 28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떨어져 뇌손상이 크게 염려가 됐다. 깨어나도 기억상실증이나 반신불수로 평생을 살아야 할 확률이 컸다. 다행히 이 씨는 거의 한 달 만에 의식을 차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왼쪽 다리가 안보여요. 그냥 다리가 뒤로 접혀 있어 그런가 보다 했죠.”
의사는 환자에게 빨리 현실을 알려주라고 했지만 가족들은 처음에 주저했다. 그러다 차가 박살난 사진을 보여주면서 “장기나 뇌에 상처가 별로 없다”며 위로를 하다가 결국은 다리가 잘린 사실을 얘기해 줬다. “아마 30분 정도는 주체할 수 없이 통곡을 한 것 같다”고 이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서러웠다. 사고는 내 잘못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길지 않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삶이 서러웠다.
경북 문경에서 교육 사업을 크게 하시던 아버지가 IMF로 수십 억의 빚을 졌고, 대구과학고 입학이 가능할 만큼 우수한 실력이었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던 지난날들의 고통과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인지도 몰랐다.
<이병한 기자.2면으로 계속>
청소년 시절 방황하느라, 또 경제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다행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자격증을 11개씩이나 딴 그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도 다른 사업으로 빚을 거의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빚쟁이에 시달리는 지긋지긋한 기억이 남아있는 한국은 더 이상 마음의 고향이 아니었다.
미국에 가족 이민 신청을 했다. 2002년 미국에 올 당시 19세. 한창 공부할 나이였지만 고등학교를 서류상으로 이미 졸업했기 때문에 일을 했다. 악몽 같은 그날도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맥주 한잔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 씨의 회복은 육체보다 마음이 훨씬 빨랐다. 이 씨는 “다리가 잘린 것을 안 다음 날부터 내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바보가 된 것도 아니고, 척추도 장기도 뇌도 괜찮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가족과 주위 분들의 위로와 격려, 기도도 큰 힘이 됐다. 이 씨는 훼어팩스 이노바 병원환자 가운데 어쩌면 가장 위문자가 많았던 사람인지 모른다. 200명 이상은 족히 넘는 숫자가 그를 찾아왔다.
태도를 바꾸니 정말 공부가 고팠다. 노바대학을 다니며 2년 간 90학점 이상을 획득했고 평점 4.0에다 전국 2년제 대학 우등생 모임 ‘Phi Theta Kappa’의 부회장을 지내며 열심히 활동도 했다.
다른 대학에도 입학이 허가됐지만 조지아텍 전자공학과(3학년 편입 예정)를 택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이 대학이 컴퓨터 기술을 의수나 의족 개발에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첨단 기술이 활용된 의족을 만드는데 성공했다지만 너무 가격이 비싸 실용화가 어렵다니 앞으로 절단 장애인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하고 싶다. 다만 일년에 3만달러나 되는 학비가 큰 부담이 돼 걱정인데 기적적으로 다시 얻은 인생처럼, 기적적으로 후원의 손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이 씨 가족에게 덮친 역경은 이 씨의 사고나 아버지 사업 실패 만은 아니었다. 형도 얼마 전 뇌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몸이 불편하다. 그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자식들이 당하는 고통을 더 크게 느꼈을텐데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은 부모님들이 이 씨는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이젠 우리 가족들은 모일 때마다 희망을 얘기합니다. 웃음도 많아졌어요. 지나간 일 후회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 않습니까? 기쁘게 살아야지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씨가 전해주는 또 다른 긍정의 메시지다.
문의 (703) 626-7165, (571) 641 -9684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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