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요리조리 하면서 한 15년 살다보니 내가 가장 듣기 싫고 가슴 섬뜩한 말이 있다. 여자들은 어찌그리 다 여우같은지, 하고 누가 그런말을 하면 꼭 나를 가리키면서 하는 소리같다. 여우가 사람키를 일곱번 훌쩍훌쩍 뛰어넘고 사람 혼을 쑥 빼간다는데 꼬리가 없다 뿐이지 여자들이 더 했으면 더했지 여우보다 절대 못할리가 없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베이에리아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다른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보다 굉장히 신사적이고 순박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누가 평생 여왕처럼 나를 받들어 준다해도 이곳을 버리고 지금같이 살고 있는 남편 곁을 떠날 생각은 전연 없다. 말이 남편이지 사실은 한집에서 딴 방을 쓰면서 내가 돈을 받고 위장 결혼을 해준 사람이다. 이제 3개월하고 몇주일쯤 지났나?
“우리 서로 과거는 묻지 맙시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화려한 조폭 두목 같은 경력을 숨긴 사람티를 냈다. 흥, 니가 마피아 고수면 어때, 돈 받고 잠깐 같이 있어줄 사람인데 알게 뭐야.
나이는 나보다 두살 적은 38살이었다. 아 그런데 조금 지나다 보니 그게 아닌 것 있지? 내 마음이 자꾸 남자라는 동물쪽으로 끌리는데 엄마야!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남자와 정식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성이 바르고 내가 어쩌다 말을 잘못하면 칼자루 쥐고 있다고 함부로 굴지말라는 식으로 사람이 예의범절이 밝고 늠름했다.
정말 내가 같이 살면서 자꾸 자꾸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나는 그가 나가는 교회도 같이 따라갔다. 난생 처음 찾아간 교회에서 방정맞게 뉴욕의 그 여자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 나는 간이 떨어질 만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뉴욕에 살 때 자주 찾아가던 사우나탕 때밀이 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사람이 다 자기 비밀을 감추고 산다지만 알수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맙게도 그 여자가 나를 전연 모르는 척 해주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실정이지만 속이 영 불편했다.
나는 얼마전까지 뉴욕에 살면서 사업하는 남편 몰래 카지노장을 드나들다가 남편 등골 모두 다 빼먹고 이혼당한 그런 여자다. 이혼 서류에 싸인을 마친 그날 밤, 쉴데가 없으니 하룻밤 만 자고 가겠다고 말하고는 남편 금시계와 돈 지갑까지 챙기고 나와 다시 노름장으로 달려간 그야말로 중독자가 다 된 년이었다.
그동안 사우나탕에 가서 그 여자한테 때밀고 맛사지 받은 횟수가 서너번 되나? 여자는 철봉대에 매달려 사람을 엎어놓고 짓이기듯이 발로 질끈질끈 밟는 그런 맛사지 잘하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나는 돈잃고 안타깝고 자신도 어쩔수 없는 속타는 마음으로 그 여자 발에 밟힐때마다, 밟아 죽여라 그래 나는 밟아 죽어야 한다고 그 여자 발에 밟히면서 속으로 얼마나 많이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중독치료사를 내발로 찾아갈수는 없고 결국 이혼 당하고 돈잃고 갈데가 없어 아는 할머니 집에 있다가 어느날 신문 구직난에서 결혼신청 광고를 보았다. 알고보니 남자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불법 체류자였다. 아이구 웬떡이냐고 얼른 계약을 하고 한집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정말 이 남자하고 정식으로 꼭 살고 싶은 꿀떡 같은 심정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남자는 루핑이나 건축일을 닥치는 대로 찾아 다니는 참으로 건실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 남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내쪽에서 귀에 들은 방어법까지 알려주었다.
“미국에서 요즈음 불법체류자를 마구 색출 한다는데 혹시 누가 우리집에 들이닥쳐 각자 따로 불러 요것저것 물어보면 당신 이름이 김소생이니까 어제는 저녁 반찬에 김을 먹었고 그제는 소고기를 먹었고 그저께는 생선 먹었다는 것 잊지 말아요. 알았죠? 김.소.생. 둘이서 똑같이 입을 맞추어야 되요.”
혹시 물어볼지 몰라 빤스 색깔도 똑같이 흰것으로 입었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모두 잊고 이 남자와 새로운 원앙의 보금자리를 포근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냥 안기고 싶다. 왜 이렇게 이 남자가 자꾸 좋아지는지.
그런데 하루는 이제 곧 나의 남편이 될사람이 아주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 부탁할게 하나 있어요. 며칠전에 산호세 어느 집을 수리하러 갔다가 거기서 일찍 미국에 건너온 옛날 친구를 만났는데 아니 자네가 웬일이냐니까 그동안 오클랜드에 살면서 가게를 하다가 거 왜 저번에 바트역에서 경찰 총에 맞아죽은 그 사건 때문에 자기 가게 유리창이며 진열대가 모두 다 박살나고 겁이나서 이사했는데 사실 그 친구한테 옛날부터 모진 앙금이 있기 때문에 나도 지금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고 했더니 자꾸 한번 놀러 오겠다는데 어떡하지요?”
“오시라고 하세요”
거침없는 나의 말에 남자는 너무 기뻐서 그런지 놀란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나를 덥석 안으려고 했다.”
“내일 저녁 오시라고 전화하세요. 제 음식솜씨 그동안 먹어봐서 잘 알잖아요. 맛있는거 많이 준비할께요.”
이튿날은 남자도 일꺼리가 없는 날이었다. 우리는 보통 이 정도로 옷을 입는다는 식으로 두사람이 모두 제일 좋은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색시를 얻을려면 장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남자 친구분이 너 여편네 참 괜찮드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있는 화장 없는 화장 다하고 기대반 설레임 반 그야말로 강아지 응아, 할곳을 못찾아 쩔쩔매듯이 하루종일 들뜬 기분이었다.
좋은 기회다. 참으로 좋은 기회다. 그럼 둘이서 여기 이렇게 같이 살아야지.
밖에서 누르는 벨소리가 들린 것은 지금 거의 다 왔다고 연락한 정확하게 10분 후였다. 무슨 엄하고 귀한분을 맞이 하듯이 남자도 그랬지만 나도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고치고 둘이서 나란히 붙어서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밖에 서있던 여자와 내가 눈이 마주치면서 똑같이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여자는 금방 입을 찢어지게 짝 째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아, 나는 그순간 내가 연기처럼 그냥 감쪽같이 사라지고 싶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아니 여보!” 급하게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어느 남자의 말소리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첫마디에 여보라고 나를 부른 남자는 내가 정말 피해야 할 나의 전 남편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사우나탕의 바로 때밀이 여자가 아닌가. 아니, 두사람이 언제?! 나만 여우인줄 알았는데.
나는 몸이 휘청거린다고 느끼는 순간, 그만 바닥에 쿵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욕지꺼리 같은 외마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비명처럼 터져나왔다.
Oh My God! 정말 장사 않되네.
<약력>
뉴욕 한국일보 현상공모 소설 입상.
본국 한국일보 신춘문예 ‘기묘한 G선’ 당선.
뉴욕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병풍성님열전’ 연재.
저서, 장편소설 ‘병풍성님열전’ 간행. 계간지 뉴욕문학과 미주에서 많은 수의 단편과 희곡 산문 칼럼 등등 발표.
한국 문인협회 회원.
뉴욕 문인협회 회원.
4권의 장편소설과 9편 모음의 단편소설을 완성시켜 놓고 출판을 계획중.
고향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이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