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 그 중에서도 스스로가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심취하고 있는 복음서는 어떤 복음서일까. 마태, 마가, 누가…. 그도 아니면 요한복음인가. 모두 틀린 답이다. 정답은 ‘알 고어 복음서’라고 한다. 친환경시대라고 하던가. 그와 빗대서 나온 말이다.
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일고 있는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하고 예측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또한 정확한 예견은 불가능하다.
가설만이 제기될 뿐이다. 그 가설이 그런데 진실인 양 받아들여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는 끝이란 파멸의 시나리오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환경문제는 어느 틈에 사회 문제로, 또 도덕 문제로 바뀌었다.
그 가운데 탄생한 것이 ‘알 고어 복음서’다. 하나뿐인 지구를 깨끗이 보존하자. 알 고어 복음서의 요지다. 그 총론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이상해진다. 일종의 도그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종교의 자리를 차지한 것.
이 상황에서 생태문제에 조금이라도 이견을 제시해보라. 그 사람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폴 크루그먼의 표현대로 ‘지구에 대해 역모죄’를 저지른 양 취급되는 것이다.
문제는 복음이 복음으로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복음의 육화(肉化)를 환경주의자들은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운동의 그라운드 제로는 진보파의 메카 샌프란시스코다.
건강식품 의무 식단화 조례제정을 고려하고 있다. 그 시당국이 시 직원 모임 시 도넛주문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시 직원들은 심지어 베이글을 먹을 때 네 조각을 내거나 반 조각을 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없다는 시 당국의 지극한 배려에서다.
그 움직임은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환경과 관련해 각종 규제가 가해진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연방세율을 대폭 올릴 방침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정책도 그렇다. 그 정책의 기본방향은 지구온난화 방지다.
무엇을 말하고 있나. 미국은 또 한 차례 문화전쟁(Culture War)의 와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쟁은 끝난 것으로 생각됐었다. 보수세력, 그 중에서도 기독교 우파의 몰락과 함께 지난 세기 한 세대를 끌어온 문화전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으로 간주됐었다.
그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 다른 것은 1차 전쟁의 주도 세력이 기독교 우파라면 이번 2차 전쟁의 주도세력은 세속주의 좌파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모든 국내외의 어젠다를 바꾸려 들고 있다.
방대한 예산적자에도 불구하고 ‘거대 정부’를 추구한다.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부활에다가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적 예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ABC순서로 나열된 유엔 가입국의 하나일 뿐이다. 해외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에 그러면 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불안감에, 일종의 피로증세다.
‘자살로 치닫는 진보세력의 행진’- 그 변화에 대한 불안감, 피로감을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는 이처럼 표현했다. 자기들만의 잔치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번 대선에서의 보수세력 몰락을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진보세력도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집권한지 불과 6개월 남짓하다. 그런 진보세력이 벌써부터 미국민 정서에 여간 둔감한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거기서 유발된 불안감, 피로증세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로도 반영되고 있다. 오바마 지지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지지율은 딕 체니 전 부통령 지지율을 밑돈다. 거기다가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지지율도 하락세에 있다. 한 마디로 세속주의 좌파가 선봉에 나선 문화전쟁에 미국민들은 염증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21세기에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화한 환경주의다.” 바츨라프 클라우스가 일찍이 한 말이다.
환경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도그마가 된 게 문제로, 포퓰리즘에 기댄 환경 이데올로기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자칫 하다가는 환경보호란 이름하에 개인생활의 구석구석을 간섭하는 에코파시즘의 대두가 우려되어서다.
2차 문화전쟁은 어떻게 결말지어질까. ‘2010 중간선거에서 미국은 정치적 대지진을 맞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 나오는 전망이다. 유권자의 반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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