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버락오바마닷컴에서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헬스케어 개혁 반대파들이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투쟁하는지, 공화당 연방상원의원 짐 드민트가 명백히 말해주었습니다”로 시작된 메일은 지난 주 드민트가 보수모임에서 행한 스피치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우리가 만약 개혁안을 저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바마의 워털루가 될 것이다. 그를 무너뜨릴 것이다” 1815년의 워털루는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최후의 전투였다.
메일은 계속된다 :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것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 관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미국의 가정, 미국의 기업, 미국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헬스케어에 관한 것이다’…의회에서 개혁안이 마무리되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구태의연한 정치에 맞서 대통령과 함께 힘을 합할 때입니다. 대통령의 헬스케어 개혁을 지지하고 의회의 조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여러분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초당적 합의를 강조해온 오바마 진영으로선 공화당과의 정면대결을 불사하겠다는 강한 반격이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가장 공들여온 최우선 과제, 헬스케어 개혁의 성패는 공화당에 달려있지 않다. ‘8월 휴회 전 상하원 통과, 금년 내 입법화’라는 백악관의 일정과 자꾸 멀어지며 개혁안의 의회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공화당이 아니다. 안하는 게 아니라 소수당인 공화당엔 그럴 힘이 없다. 오바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민주당내 반대 보이스다. 상원의 중도파들도 지지를 유보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반발하고 나선 그룹이 하원의 ‘블루 독 의원’들이다.
푸른 개들, Blue Dogs는 민주당 하원내 중도보수파 의원들이다. 80년대 레이건의 감세정책을 지지했던 중도 민주당원들의 정치적 후손이라 할 수 있다. 공화당의 링컨이 싫어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했던 ‘옐로우 독’에서 파생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1994년 보수파 민주당 의원들이 단합된 보이스를 내기위해 단체를 결성했을 때 남부화가 조지 로드리게즈의 ‘블루 독’ 그림이 걸린 방에서 창립회의를 가지면서 이름을 지었다고도 한다.
공화당 표밭이었던 지역에서 당선된 블루 독들은 무늬만 민주당인가 싶게 낙태, 동성애, 총기규제 등 리버럴 이슈는 거의 다 반대하지만 특히 강조하는 화두가 균형예산,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재정적자다. 그런데 헬스케어 개혁안이 시행될 경우 앞으로 10년간 늘어날 재정적자가 1조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의회예산국의 분석이 지난주에 나온 것이다. 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현재 다듬어가고 있는 상원안과 하원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목표가 같으니 뼈대는 비슷하다. 자동차 보험처럼 건강보험도 전국민 의무적 가입을 토대로 한다. 가입 형편이 못되는 수천만 저소득층을 지원해야하니 재원마련이 최대쟁점이다. 하원안은 부유층 세금인상을 제안했고 상원 재무위는 고소득층의 직장보험 혜택에 과세 등을 토의 중이다.
개혁안이 상하 양원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먼저 관련 위원회의 심의와 표결을 거쳐야 한다. 이번 개혁안 관련 위원회는 양원 합해 5개다. 지난주 개혁안을 통과시킨 상원의 보건위와 하원의 세입위 및 교육노동위, 그리고 아직 개혁안을 완성 못한 상원의 재무위와 며칠째 심의 일정을 취소해 온 하원의 에너지통상위원회다. 에너지 통상위는 36명 민주당과 23명 공화당으로 이루어졌는데 민주당 중 7명 블루 독들이 엄청난 개혁경비가 고스란히 적자로 이어질 현재의 법안 그대로는 절대 찬성 못한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보수지역을 표밭으로 둔 이들의 입장에선 내년 선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이 공화당과 손잡으면 통과는 불가능해진다. 하원 본회의 표결 역시 51명의 블루 독들이 합심해 반기를 들면 개혁안은 죽어버릴 수 있다.
엊그제 오바마도 블루 독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달래고 얼렀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부 반란자들을 달래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너도나도 요구가 계속되고, 너무 강하게 압박하면 앞으로 긴 세월 대의회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다. 2010년 선거 결과도 감안해야 하니 압박수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어제 기자회견을 포함, 지난 열흘 오바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케어 개혁의 빠른 실현을 강조해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여론 설득만이 아니다. 블루 독들의 반란을 잠재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칫 집안단속을 소홀히 했다가는 눈앞에 다가온 수십년 민주당의 꿈, ‘전국민 의료보험’이 또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월스트릿 보도에 의하면 실직 증가로 인해 요즘 의료보험을 상실하는 사람이 매일 1만4천명씩 늘어 난다고 한다. 어제 발표한 갤럽의 여론조사는 미국인 전체 성인의 16%가 무보험자라고 집계했다. 한인 무보험자는 두배가 넘는 35%로 추산된다. 재정난 심한 캘리포니아에선 예산삭감으로 어린이 무보험자도 급증할 전망이다. 헬스케어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또 밀려서는 안 될 국민의 기본권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 통계도 말해주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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