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옥스퍼드영어사전에 새 단어 하나가 추가되었다 : bork, 어떤 사람의 공직임명을 저지한다는 뜻의 동사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에 지명했던 로버트 보크판사의 이름에서 따온 단어다.
연방대법관 상원인준 과정은 로버트 보크 청문회를 분수령으로 그 이전과 이후 분위기도, 비중도 완연히 달라졌다. 지명자의 이름이 동사가 될 만큼 당시의 인준과정은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정쟁이었다. 극단적 보수주의자 보크가 지명된 지 45분 만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상원 본회의장에서 보크를 강력히 비난했다.
“로버트 보크의 아메리카는, 여성이 낙태수술을 뒷골목에서 받아야하고 흑인이 격리되어 점심을 먹어야하며 악랄한 경찰이 한밤중에 개인 집을 박차고 들어가는…그런 나라다” 전국에 TV중계된 케네디의 연설은 보크 반대여론에 불을 붙였고 인준은 58대42로 부결되었다.
의례적 통과절차로 대부분 만장일치로 가결되던 인준 청문회가 양당 정치게임의 장으로 변한 것은 이때부터다. 지명자의 경력 검증을 넘어 개인사까지 낱낱이 공개되고 비판당하는 자리가 되었다. 1991년 청문회에서 여성 변호사의 성희롱 주장으로 곤욕을 치른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하이텍 린치’라며 분개했고 백인남성클럽 회원경력에 인종주의자로 낙인찍혔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2006년 청문회에선 부인 마서-앤 얼리토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보크’당하지 않고 무사히 인준 받았다. 공화당의 필사적 찬성이 민주당의 적극적 반대를 누른 덕이었다.
소니아 소토마요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상원법사위 인준청문회가 나흘째로 접어들고 있다. 첫 번째 히스패닉 대법관이라는 역사성까지 더해 민주-공화 양당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다수당의 파워를 과시하는 여유로운 민주당에 비해 부담이 큰 쪽은 공화당이다. ‘리버럴한 대통령이 지명한 리버럴한 대법관 후보의 편향된 사법관’을 신랄하게 지적하여 보수진영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급성장하는 라틴계 표밭도 감안해야 하니 너무 심하면 안되고…소토마요를 향한 공격 수위를 조절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소토마요의 인준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청문회의 쟁점도 인준여부가 아니다. 과연 바람직할 대법관이 될 수 있는가, 소토마요는 어떤 법관인가에 대한 해부다. 그런데 공화당과 민주당의 눈에 비친 소토마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공화당의 소토마요는 ‘편견을 갖고 소수계 권익옹호에 앞장서는 사법부의 운동권’이고 민주당의 소토마요는 ‘편견없는 절제된 판결성향을 17년 기록이 증명해주는 유능한 주류 법관’이다.
두 시각 다 근거는 있다. 소토마요는 백인엘리트 사회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후 자신의 정체성을 실감하며 소수계 권익활동에 뛰어 들었다. 대학당국의 소수계 등용부진을 연방정부에 고발하기도 했고 예일법대 재학시엔 법률회사 취업담당관의 차별적 언사를 문제삼아 정식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소수계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수많은 스피치에도 앞장섰다. 공화당이 가장 문제삼는 ‘현명한 라티나’ 발언이 담긴 연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법정경력엔 흠 잡을 것이 별로 없다. 연방지법과 항소법원 판사로 그가 내린 판결은 법에 충실한 법관의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통계가 증명한다. 뉴욕법대 연구소가 그의 판결이 담긴 1,194 케이스를 분석한 결과 98.2%가 다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청문회는 말하자면 어느 면이 소토마요 판사의 진짜 모습인가를 가리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이다. 양당의 주장 모두 100% 믿을 것은 못된다. 소토마요 뿐이 아니다. 보크이후 어느 지명자도 청문회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명석한 이들은 철저히 대비하여 불필요한 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무난히 인준을 받는 비결을 이미 터득한 것이다.
강경보수 보크는 소토마요 인준을 당연히 반대하지만 청문회에서 살아남는 충고 한마디는 던졌다 : “성질부리지 마시요” 그리고 소토마요는 요즘 이 충고를 정말 잘 새기고 있는 듯 보인다. 평소 열정적이고 감정 풍부한 불같은 라티나는 자취를 감추었다. 낙태, 총기소유, 고용차별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정연한 논리로 차분하게 답변한다. 누구도 트집 잡지 못할 일반론일 뿐 ‘뉴스’가 될 만한 구체적 견해는 없다. 지루할 정도다. 그러나 백인남성들의 무차별 공격이 쏟아져도 별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대처하는 ‘현명한 라티나’의 방어전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변화하는 미국을 상징하는 ‘소토마요 대법관’에 대한 소수계의 기대는 크다. “난 법에 충실한다”는 그의 신념에 더해 “우린 로봇이 아니다”란 그의 믿음도 첫 번째 히스패닉 대법관이 남길 유산의 밑그림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공화당이 마치 ‘범죄’처럼 취급하는, 그래서 소토마요 자신도 거리를 두는 공감(empathy)능력은 힘없는 보통사람들이 대법관 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에게 원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중 하나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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