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개막된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현대작가 12인전에 관해 지난 몇 달 동안 얼마나 많은 기사를 썼던지, 한국현대미술에 관해 박사학위를 받아도 좋겠다고 농담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마이클 고반 LACMA 관장으로부터 큐레이터들을 인터뷰한 통판기사들은 물론이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12주 기획기사, 본보 미디어후원 보도, 오프닝 리셉션, 서도호의 아티스트 토크, 그리고 두 페이지 펼친 전시장 가이드에 이르기까지 한 문화 이벤트를 놓고 이렇게 많은 기사를 쓴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열심히 보도했는가 하는 것은 당연히 이게 너무도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LACMA처럼 영향력 있는 뮤지엄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기획전을 갖는 일은 미국에서도 처음이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LA·휴스턴·서울에서 일하는 3명의 큐레이터가 무려 5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기획전인데, 작가 개인의 역량이 중시되는 현대미술계에서 한국이라는 특정 나라의 작가들을 묶어 전시회를 만든 일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가 개막되기 열흘 전쯤 작품 설치가 한창 진행 중인 라크마를 방문했었다. 그때 본 장면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럽던지 한동안 가슴 한 켠이 뿌듯했다. 그들은 바로 작년에 새로 지어 개관한 BCAM 현대미술관의 드넓은 2층 공간을 한국현대미술전을 위해 완전히 다 뜯어고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비디오 아트나 설치미술인 관계로 그 전시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각 작가의 전시공간을 벽으로 분리한 다음 각 전시장마다 작품에 맞추어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을 깔고, 전기배선을 하느라 수십명의 인부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작가들도 공사현장에 나와 자신의 작품 설치를 지켜보며 함께 일하는 모습은 뮤지엄 전시라는게 얼마나 철저한 준비 끝에 이루어지는지를 직접 확인시켜준 현장이었다.
이 전시가 특별한 또 한가지 이유는 작품을 전시장 밖으로 끌고나온 시도 때문이다. 최정화의 작품은 모두 라크마 캠퍼스 외부에 설치돼 있다. 아만슨 빌딩을 빨강노랑파랑 천들로 둘러싼 ‘웰컴’, 99센트 스토어에서 사들인 수천개의 플라스틱 소쿠리들을 주렁주렁 매단 ‘해피해피’, 윌셔가 정문에 걸려있는 고 박이소의 유작 ‘우리는 행복해요’ 등은 누구나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라크마 웹사이트(www.lacma.org)에서 장영혜 중공업의 온라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클릭하는 순간 독특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웹아트 텍스트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2~3분간 계속되는 한 작품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라크마 사이트의 첫 페이지가 떠오른다. 이런 시도들은 라크마의 어떤 기획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것으로 이 모든 재미있는 일들이 전시가 끝나는 9월20일까지 계속된다.
이러니 이 전시에 대해 우리만 그렇게 흥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2주 동안 LA타임스는 한국현대미술전에 관해 무려 다섯차례나 기사를 내보냈다. 그것도 대충 쓴 작은 기사가 아니라 모두 대단한 호감을 갖고 흥미진진하게 다룬 특집기사들이다. 두번이나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서도호와 최정화는 따로 인터뷰하여 별도 기사를 썼으며, 온라인에서도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사진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LACMA 특별전을 다룬 주류신문의 기사들을 오랫동안 봐왔지만 이렇게 집중적인 스팟라잇을 받은 전시는 이제껏 없었다.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하게 얘기했는데도 이 전시를 안 보고 지나가려는 한국일보 독자는 없으리라 믿는다. 라크마에서도 한인사회의 반응에 엄청 신경 쓰는 눈치다. 더구나 이번 전시를 아우르는 큰 주제가 언어와 소통에 관한 것, 유목민적인 삶에 관한 작업들이라 마치 미주한인들의 삶과 정서가 반영된 것처럼 동질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적지않다.
LA에 살면서 이제껏 한번도 라크마에 가본 적이 없다면, 작년에 개관한 BCAM의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한번도 타본 적이 없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2층에서 한국전시만 보고 그냥 가지 마시고, 3층으로 올라가 현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들도 일별하는게 좋겠다. 또 1층에는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철제작품 ‘밴드’가 공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한 구석에 있는 구정아의 작품도 찾아보고 가면 좋겠다.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공원으로 나가 6가쪽 펜스, 누구나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또다른 ‘해피 해피’에 플라스틱 한 조각을 걸어놓고 가시라. 당신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정숙희 특집 1부 부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