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머티브 액션이 이번주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한 걸음 더 벼랑가로 내몰렸다. 2008-2009 회기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9일 대법원이 역차별 소송에서 5대4로 백인 소방관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공화당 8년 동안에 확실하게 자리잡은 대법원의 보수화가 주요원인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적극적 조치’라는 의미의 Affirmative Action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에서다. ‘인종차별 없는 고용 확인을 위한 적극적 조치’에 의한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은, 그러나 지난 48년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민권법도, 민권법 실현을 위한 소수계 우대정책도 그 실제 적용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모순과 부작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민권법에는 크게 두가지 고용차별 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우선 민권법 제7조는 고용주가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출신국가를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불평등 대우’에 대한 금지라고 흔히 표현된다. 다른 하나는 ‘불평등 효과’에 의한 차별금지다. 1971년 듀크 파워 회사가 취업자격으로 고교졸업장을 요구, 흑인지원자의 88%가 탈락하면서 제기된 소송의 연방대법원 판결이다. 겉으론 고의가 없는, 중립적 고용정책이라도 실제로 소수계에 불이익을 주는 효과를 초래한다면 위법이라는 판시다. 후에 연방의회가 이 금지도 입법화시켰다.
그런데 사회가 바뀌면서, 소수민의 성공적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유색인종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 사라지면서 30여년 병행되어온 두 가지 금지조항이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소수계에 대한 ‘불평등 효과’를 사전에 예방하기위한 고용조치가 백인에게는 명백한 ‘불평등 대우’를 초래한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 케이스가 바로 딱 떨어진 이런 경우다. 연방지법과 항소심에선 시당국이 승소했다. 이 케이스가 전국적 뉴스의 각광을 받게된 것은 항소심을 담당했던 3명의 판사 중 한명인 소니아 소토마요가 오바마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으로 지명 받으면서다.
2003년 코네티컷 주의 뉴헤이븐 시는 소방관 승진시험을 실시했다. 20여명의 흑인을 포함 118명이 응시했는데 합격권내에 단 한명의 흑인도 포함되지 못했다. 테스트 자체가 소수계에 불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시험결과로 승진인사를 단행할 경우 소수계가 차별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대책마련에 고심하던 시당국은 시험결과를 무효화시켰다. 물론 승진인사 계획도 백지화되었다. ‘불평등 효과’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을 준수한 것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승진을 기다리던 소방관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조치였다. 18명 백인과 1명의 히스패닉 등 19명의 고득점 소방관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피부색에 의한 역차별, ‘불평등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뉴헤이븐 시 소방국내 인종 불균형의 역사는 길다. 시인구의 60% 이상이 흑인과 히스패닉이지만 소방국 고위직엔 소수계가 한명도 없다. 소방국내 인력은 물론 노조까지 대대로 이어오는 백인편향이 강해 분위기 자체가 소수계 승진에 친화적이 아니다.
원고 중 프랭크 리치의 스토리가 자세히 보도되면서 케이스는 훨씬 강력해졌다. 근로계층 가정에서 자란 리치는 학습장애로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C와 D학점이 고작이었으나 성실히 노력했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화재과학을 공부한 후 소방관이 되었다. 경력 11년차인 그는 이번 승진 시험을 위해 부업도 그만두고 하루 8~13시간씩 공부했다. 난독증이 있어 모든 교재를 오디오테입으로 제작하느라 1,000달러를 지출해야 했다. 그렇게 노력하여 6위라는 좋은 성적을 얻었다.
미국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차별적 정책에 희생될 뻔한 것’이다. 여론의 70%가 백인 소방관들의 역차별 주장을 지지한다. 흑인들의 53%도 같은 의견이다. 아무 잘못이 없는 ‘역차별’의 희생자가 대부분 부유층 엘리트 백인이 아닌 저소득 근로계층 백인이라는 것도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지지도가 자꾸 낮아지는 배경의 하나다.
‘불평등 대우’의 위법성을 인정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그러나 ‘불평등 효과’를 무효화시키지는 않았다.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위헌은 아직 아닌 것이다. ‘소수계에 대한 차별을 막기위해 백인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이번 판결의 메시지가 앞으로 고용현장에서 얼마나 폭넓게 적용될 지도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다. 그러나 계속 보수화를 향해 치닫는 대법원이 머지않아 어퍼머티브 액션을 벼랑 아래로 밀어버리는 건 아닌지는 걱정된다. 아무리 흑인대통령시대라 해도 미국이 아직 완전한 평등사회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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