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 드라마는 언제나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슬픔, 기쁨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며, 희망도 얻는다.
지난 주 LA 타임스에 실린 한 흑인소녀 카디자 윌리엄스(18)의 하버드대 진학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카디자는 출생부터가 기구했다. 생모가 14세이던 때에 태어났고, 현재는 노숙자 가족의 일원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고된 삶 때문에 12년 동안 12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카디자는 어떻게 쟁쟁한 인재들을 물리치고 하버드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올 가을학기 대학입시 경쟁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하버드 대학은 합격률이 7.1%로 역대 최저였다.
카디자가 걸어온 길을 조금 더 살펴보자.
초등학교 3학년 때 치른 캘리포니아주 학력평가 시험에서 최상위 1% 내에 들어서는 성적을 받았고, 교사는 카디자를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등록시켰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후 수차례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매일 신문을 탐독하고, 한 달에 평균 4~5권의 책을 읽었다.
노숙자 숙소에서는 “너는 결국 스키드 로우에 살게 될 거야”라는 주변의 빈정거림을 받아야 했지만,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10학년 때 성공을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카디자는 주변의 비영리 기관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11학년 가을 LA 제퍼슨 고교에 등록하면서 졸업과 추천서를 위해 노숙자 어머니가 어디를 가든 상관없이 이 학교에 끝까지 남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새벽 4시에 기상해 11시에 귀가하는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학교에서 10종 학력경시대회 팀과 토론 팀, 육상 팀에서 활동하면서 4.0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다.
카디자의 성공에는 멘토들의 적극적인 도움도 한 몫을 했다. 카디자가 찾았던 기관들의 관계자들은 장학금을 신청해주고, 일부 인사들은 집으로 초청해 테이블 매너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직접 가르쳤다. 특히 카디자의 인물 됨됨이를 알아본 하버드대 인터뷰 담당자 줄리 힐든은 “이 학생을 합격시키지 않는다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카디자의 하버드 진학 이야기는 내년 가을학기 입시를 준비 중인 예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교훈을 동시에 전하고 있다. 우선 많은 부모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명문대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의지와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음을 카디자가 몸으로 보여줬다.
또 미국의 대학들이 여전히 ‘열린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 역시 반가운 일이다. 하버드는 카디자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비록 경제 불황으로 재정이 어렵지만, 인재를 찾아내고 육성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미국 대학들의 모습에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했다.
반면 이 이야기는 우리 자녀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단지 이 흑인 소녀가 진학한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도 하버드를 목표로 삼으란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대학진학이 곧 인생의 성공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카디자의 성공 스토리를 가정형편과 성장배경이 다른 각각의 우리 자녀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얘는 이런데 너는…”이라며 자녀들에게 직접 비교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예비 수험생들은 SAT 점수를 한 점이라도 높이기 위해 학원까지 다니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아마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한 번 자녀와 미래에 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눠보자.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들어보자. 그래야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자녀의 목표설정과 달성을 위한 일정 부분은 여전히 부모 몫이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새로울 게 없는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이 순간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것도 카디자의 또 다른 선물이 아닐까
황성락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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