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헬스케어 개혁을 둘러싼 최대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돈, 개혁 실현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둘째는 정부의 역할, 특히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보험 신설여부다.
어제 ‘헬스케어 전쟁’이 공식적으로 막을 올렸다. 연방상원에서 첫번째로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가 법안작성에 들어갔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오랫동안 꿈꿔온 리버럴의 기수 에드워드 케네디의원의 개혁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톰 대슐을 비롯한 전직상원의원 4명으로 이루어진 초당적 스터디그룹이 마련한 권고안도 나왔다. 케네디안 보다 중도적일 상원 재정위 개혁안은 예정했던 17일보다 며칠 늦게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헬스케어 관계당사자들과의 물밑 접촉엔 적극적이었지만 법안작성은 의회에 맡겨 두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본격 개입에 나섰다. 스피치와 순회 타운홀 미팅 등 대국민 세일즈에 돌입했다. 시간이 급한 것이다. 백악관이 민주당에 요구하는 일정은 듣기에도 숨 가쁘다. 6월중 법안을 마련하고 7월에 심의를 마친 후 8월초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전 상하양원 안을 각각 통과시켜놓았다가 9월에 절충안을 마무리하여 10월15일까지는 대통령이 서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평범한 이슈가 아니다. 연 2조5천억달러, 엄청난 규모의 미국 의료산업 구조를 전면 개편하는 작업이다.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들이 예상보다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퍼블릭 플랜’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을 신설하는 것이다. 케네디안에 포함된 사항으로 노인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를 전 국민에게 확대시키는 셈이다. 소비자는 기존의 민간보험과 정부보험 중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정부보험의 보험료는 민간보험보다 30% 가량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보험이 도입될 경우 현 민간보험 가입자 중 1억1,900만명이 정부보험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르윈 리서치그룹은 예상한다.
반대의 아우성이 요란하다. 보수진영에선 사회주의적 ‘헬스케어의 국유화’로 가는 첫 단계라고 비난하고, 보험업계에선 민간보험을 다 죽일 셈이냐고 펄쩍 뛰고, 병원과 의사들은 의료비 대폭 삭감을 우려한다. 이들을 향해 오바마는 공공보험이 “헬스케어 시장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보험회사들을 보다 정직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득한다.
이해당사자들의 필사적 반대가 개혁안 전체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퍼블릭 플랜의 물타기를 고려하고 있다. 정부보험은 민간보험가입이 거부된 경우에만 허용한다든가, 정부보험대신 비영리 의료조합을 신설한다든가…정부 개입을 약화시킨 퍼블릭 플랜이 재정위 개혁안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보험 보다 훨씬 큰 난제는 돈이다.
오바마는 헬스케어 개혁을 통해 수직상승하는 의료비지출을 잡지 못하면 재정적자 해소, 나아가서는 경제회복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의회예산국이 이번주 공개한 개혁안의 평가는 좀 다르다. 케네디안을 포함한 민주당 개혁안들이 모두 1조 달러가 넘는 기금을 필요로 하며 당장은 적자해소는커녕 적자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상원 재정위가 개혁안 논의를 미룬 것도 예산국 평가에 따른 자금 마련 대안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선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대립한다. 오바마와 케네디 쪽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공제 제한과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경비 삭감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재정위 쪽에선 직장보험 혜택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한다. 담배와 주류, 소다 등에 대한 과세, 전국민 보험가입 의무화로 경비를 해결하자는 제안도 나와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어느 것도 보장된 해결책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헬스케어에 대한 여론은 양면성을 보여준다. 절반이상이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서도 현재 자신이 가진 보험에 만족한다는 대답이 75%나 된다. 개혁을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상유지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바꾸어 말하면 법안논쟁이 가열되는 와중에서 개혁이 자신에게 손해일 수 있다는 불안이 생기면 지지는 한순간에 반대로 변할 수 있다.
헬스케어 개혁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이 ‘불안’이다. 무보험자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채 연방적자만 늘어가고 내 보험료는 여전히 올라가는데 세금마저 인상된다면…이렇게 가중되는 소비자의 불안은 이해그룹들이 노리는 공포전략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불안해하는 미국민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어야 할 ‘오바마의 설득력’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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