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전투중의 하나가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13일까지 치룬 장진호 전투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식 지명 기록 때문에 장진호를 미군에서는 초신호(Chosin Reservoir)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곳 전투에서 살어남은 병사들을 Chosin Few라고 칭하며 선택된 정예군으로 예우를 한다. 그들에 대한 대접은 다른 일반 해병들에 대한 것과 달리 정중한 것이다. 이들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이 1970년대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은 미 해병대 창설기념식에서였다. 당시에는 한국전 참전 미 해병대 용사 특히 Chosin few가 예비역에 여러명 있었다. 나와 같이 참석한 우리 해병을 보며 퍽 반가워했고 그 인연으로 나도 장진호에서 전투한 미 해병대 1사단 예비역회에 정회원이 되었다. 이제 6월에 한국전 발발 59년을 맞으며 잘 알려지자도 않은 땅에서 산화하고 부상당한 그들을 기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50년 10월 중순에 한국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미군들은 귀국하여 가족과 추수감사절을 지낼 준비에 여념이 없던 10월 하순에 난데없는 중공군이 압록강를 넘어 한국전에 개입하며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국경과 멀지 않은 장진호 근처에 미해병1사단, 미육군 7사단 전투단, 미육군 3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영국 해병대가 배속된 상태였지만 주력부대는 18,000여명 병력의 미 해병사단이었다고 한다. 육군 수뇌부에서는 밀려오는 중공군을 맞아 진격하라고 했으나 사단장 스미스소장은 장진호 근처에 자체 방어선을 구축하며 군수물자를 적절한 곳에 비치하였다. 이 작전이 중공군 포위망를 뚫고 나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 미군 총병력은 30,000명 정도인데 포위를 한 중공군은 150,000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포위망을 헤치고 나오는데 어떤 기자가 이제 해병이 후퇴하느냐고 하니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천만에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소”라고 그 와중에서도 재치있게 답변을 했다고 한다.
기온이 화씨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서의 전투는 적보다 날씨가 더 무서웠다고 한다. 위생병들은 부상병 응급치료할 몰핀이 얼어붙어 약병을 입속에서 녹이며 치료를 했다고 한다. 미 해병대에 배속된 영국 해병은 900여명이 적진을 헤치고 나오다가 300여명만 성공하고 600여명은 전사하거나 중공군에 포로가 됐다고 한다. 해병 1사단 18,000병력중에서900여명의 전사자와 12,000여명이 부상을 했거나 동상에 걸린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한편 중공군은 35,000여명의 전사자를 냈다. 이 상황에서도 제공권을 갖고 있던 미군은 4,000여명의 부상자들을 후송했고 500여명의 증원군을 보내기도 했다. 치열한 전투였다. 미군의 사기를 꺽으려는 중공군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전사자와 부상자를 이끌고 흥남까지 도착했다. 전사자와 부상병을 적진에 방치하지 않는 미해병대 전통을 고수하며 철수했다. 그 이외에도 군차량과 군수물자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고 모두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흥남부두에서 군수송선 193척에 군인 105,000 명과 북한 피난민 98,000명 그리고 군차량 17,500대와 군수물자 350,000톤을 선적하고 부산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미 해병대는 이 전투에서 해병 5명과 육군 2명이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Medal of Honor를 받게 되었고 후일 두 명의 장교가 해병대 사령관이 되기까지 했다. 얼마전 San Diego Union-Tribune신문 ‘로저스’ 기자가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노해병과 인터뷰를 했다. FBI에서 은퇴한 ‘블렛소’라는 사람은 당시에 19살의 해병 소총수였다. 그를 포함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한국전은 정당하게 공산주위 위협을 격퇴한 전쟁이라고 믿고 이 전쟁을 통하여 중국과 러시아가 임의로 다른나라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들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이들의 희생으로 지금 자유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전 세계의 열번째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감사해야 할 것은 공산치하에서 어려움을 겪던 거의 십만명의 우리 이북동포를 구출한 사건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흥남철수 작전이다. 한동안 이상한 한국의 정치기류로 이들을 섭섭하게 했으며 이들을 침략자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 이제 북한집단이 남침한 60여년전 6월을 맞아 우리를 구출한 이들에게 다시 감사를 표하고 통일이 속히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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